1. 의료 디지털 전환의 현 좌표와 디지털 기반 필수의료 현실화를 위한 정책 방향 - 이지선 책임연구원
■ 들어가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의료서비스는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맞이하게 되었다. 디지털 기술은 의료서비스를 더 효율적이고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로 부상하였으며, 특히, 필수의료 분야에서는 디지털 기술 도입이 단순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생명과 직결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2023년 10월, 정부는 ‘필수의료 혁신전략’에서 ‘디지털 기반 필수의료 추진 전략’을 제시했다. 해당 전략은 응급의료, 중환자 치료 등 필수의료 시스템의 중요한 부분을 디지털화함으로써 환자 생명과 직결된 진료 수준을 향상시키고, 지역의료 자체충족률(Relevance Index, RI)을 95%이상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현장 활용을 전제로 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과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첫째, 필수의료 현장에서의 장애요인이다. 예를 들어, 개발된 기술들을 어떻게 검증하고 확산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또한 필수의료 분야는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역 의료자원간의 연계, 실시간 데이터 공유, 그리고 의료진 간의 원활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 여러 의료기관과의 디지털 역량 차이, 환자 데이터 보호 등도 주요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코로나19 이후, 여러 부처에서 보건의료 분야의 디지털 전환을 목표로 다양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 개발 환경이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가 실제 의료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 평가하고, 그 효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모니터링 및 검증 체계는 부재한 상황이다. 이는 연구개발의 성과가 현장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기술이 환자 치료 결과나 환자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정량적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기술의 실효성을 논하기 어렵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정책적 관점에서 필수의료 서비스에 디지털 기술을 효과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전략적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의료 디지털 전환의 본질에 대해 살펴보고, 주요 국가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의 디지털 전환 현황과 과제를 점검하고자 한다. 더불어 필수의료 분야 디지털 전환을 위해 정부와 개별 의료 기관이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수용해야 할 변화와 각자의 역할을 제안하고자 한다.
■ 의료 디지털 전환의 본질 보건의료 디지털 전환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기술적 기반은 일반적으로 예상가능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수준을 크게 벗어날까? 보건의료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기술을 도입하거나 병원 시스템을 디지털화하는 것이 아닌 헬스케어 체계의 모든 요소를 통합적으로 변화시키는 전략적 혁신으로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의료서비스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건의료 디지털 전환은 기술적(technical) 혁신이라기 보다 사회적(social) 변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동력이다.
보건의료 디지털 전환은 환자 중심의 접근과 결합될 때 진정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개별 기술이 헬스케어 체계의 모든 요소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환자의 편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이 때 의료기관은 헬스케어 체계의 중심에 위치하여 의료서비스 주요 제공자로서 디지털 전환의 출발점이자 중요한 구성 요소로 작동한다. 따라서 의료기관 디지털 전환과 전체 보건의료 디지털 전환은 상호 보완적이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해야 하며, 국가차원의 전략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 국외의 의료 디지털 전환 정책 시사점 독일은 2015년 UN의 지속 가능한 성장 아젠다인 ‘Transforming Our World’에 따라 보편적 보건복지 증진을 목표로, 디지털 텔레매틱스 인프라(TI)와 전자건강기록(EHR) 확장을 위한 법률 체계를 정비하고 관련 인프라 확충에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2015년 「E-Health 법률」제정을 통해 보안 텔레매틱스 인프라 개발과 의료 애플리케이션 도입을 위한 정책적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이후 디지털 의료 시스템 구축을 위한 다양한 법률이 순차적으로 제정되었다.
독일의 보건의료 디지털 전환 정책은 환자 중심의 데이터 통제, 의료기관 디지털 전환 지원, 의료와 개호 서비스의 통합, 데이터 보호와 혁신 간의 균형, 그리고 디지털 인프라 구축과 같은 핵심요소를 중심으로 종합적 접근을 취하고 있으며, 법제도적 프레임워크를 통해 디지털 전환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정책의 명확성을 높이고,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협력을 원활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표 1>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18년 SIP 정책 2기(2018~2022)에서 고도로 선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효율화·디지털화 중심의 AI 의료기관을 10개소 추진하기 위해 5년간 1억 달러 이상(한화 약 1,344억원)을 투자하였다. 코로나 19 이후 원격의료를 전폭적으로 허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만성질환을 보유한 환자들의 건강정보를 EHR 또는 PHR로 수집한 뒤 개별 산업주체에게 전달함으로써 기술적 발전을 추구하는 의료, 간호, 건강정보 활용을 위한 통합플랫폼 구축 사업을 추진하는 등 의료 디지털 전환의 초기 단계 시범사업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일본의 보건의료 디지털 전환 정책은 기술 개발과 의료기관 운영시스템의 디지털화를 통합하여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기술 도입이 연구 단계에 그치지 않고, 의료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도록 체계적으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신뢰할 수 있는 AI서비스를 의료기관 등에 제공하기 위해 일본의사회 AI 병원 추진센터(JMAC-AI)가 허브 역할을 수행, 의사, 의료기관, 의료 AI플랫폼 (HAIP), 기업 (AI벤더 및 의료기기산업연합회 등)이 함께 추진, 운영하는 공적 거버넌스 체제 구축을 통해 각 이해관계자 간 협력과 조율을 강화하여 의료 시스템 전반에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 우리나라 의료 디지털 전환의 현 좌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그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디지털 선도국으로서, 우리나라는 의료시스템에 최신 헬스 기술과 IT 인프라를 도입하며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의료 데이터의 광범위한 활용, 스마트 병원, 비대면 진료, 그리고 인공지능(AI) 기반 의료 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수요가 지속되면서 이를 한시적 허용이 아닌 법적 제도로 정착시키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양한 의료기관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일관된 형식으로 통합하는 데이터 표준화 문제, 민감한 의료 정보의 안전한 관리와 유출 방지를 위한 개인정보 보호 체계의 마련, 의료 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이고, 환자가 자신의 건강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된 스마트병원 구축 지원 사업은 의료기관에 ICT와 IoT 기술 등을 도입하며 73개의 스마트병원 선도모델을 개발하였다. 외래자동화 및 환자흐름최적화, 인공지능 기반 이송시스템을 통한 물류자동화 등 일부 모델은 의료 현장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환자와 사용자의 경험평가 결과가 높았던 반면 사용자편의성 부족, 의료환경 변화와 재정적 어려움, 내부 저항 등으로 일부 모델은 중단되었다.
초기 투자 비용과 법적 불확실성도 주요 장애물로 작용했으며, 특히, 기관 간 협력이나 지역기반한 통합 모델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2024년부터 개별 의료기관 중심의 모델에서 벗어나 “네트워크형 스마트병원” 구축으로 기존 사업 방식을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원격중환자실 통합관제 및 비대면 협진 시스템이 있으며, 2025년 ‘중환자실 원격협진 사업’으로 정부예산안이 확정되었다. 선도모델 개발 이후 의료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한 모델 중 일부는 2022년에 지방의료원 대상으로 확산이 이루어졌다.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공공병원의 업무효율과 중증진료역량 제고를 위한 거점병원과의 수직적 연계체계 마련 측면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최초의 투자로 지속성을 갖출 경우 공공병원의 EMR 표준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개별 의료기관의 분절된 노력을 체계적으로 통합하고, 재정적·법제도적 과제들을 관리하며, 전략적인 디지털 전환 방향을 제시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디지털 전환은 개별 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로 인해 개별화와 분절화라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기술 개발 성과가 의료 현장에 효과적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문제를 초래하며, 디지털 전환의 전반적인 효율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개별 의료기관의 분절된 노력을 체계적으로 통합하고, 재정적·법제도적 과제들을 관리하며, 전략적인 디지털 전환 방향을 제시하는 국가단위의 디지털 의료관리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 디지털 기반 필수의료 현실화를 위한 준비와 과제
1. 디지털 전환의 목적과 방향성 명확화 디지털 기반 필수의료 현실화를 위해서는 필수의료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수의료 분야의 디지털 전환이 성공하려면, 기술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기술은 변화의 도구에 불과하며, 그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 주민들에게 더 나은 필수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다. 디지털 전환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 단계, 기술 수용 단계(실증 단계), 서비스 활용 단계로 세분화하고, 각 단계별로 정교하게 기획하고 집행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기술 개발에만 집중된 상태로, 유사한 과제를 중복해서 추진하는 경우가 많고, 기술 개발 이후의 서비스 활용 단계에서는 지원 및 관리 체계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표 2>
필수의료체계는 의료기관 자체의 최적화(optimality)뿐 아니라 지역 내 여러 의료기관들이 연계된 시스템의 최적화(optimality)가 중요하다. 정부는 이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디지털 기술을 개발하고 현실에서 구현되도록 지속성을 갖추어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 간 디지털 전환 수준의 격차, 연계병원 간 진료 수준 차이, 상이한 시스템 환경, 그리고 법적,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우수한 기술이 현장에서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기관 간의 디지털 역량을 표준화하고, 둘째, 연계 병원 간의 중증도 조정 및 협력 방안을 마련하며, 셋째, 법제도적 제약을 완화하여 디지털 기술이 실제 환경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3. 현장 활용성 강화와 성과 모니터링 체계 확립 디지털 헬스케어 시스템이 의료 현장에서 효과를 발휘하려면 기술적 인프라와 현장 적응력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더라도, 현장에 맞춰 유효하게 적용되지 않으면 기대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장 상황에 맞춘 기술 최적화가 필요하며, 동시에 사용자 중심의 설계와 교육,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기술 도입 후 일정 기간 동안 현장에서의 사용 패턴과 의료진의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을 통해 디지털 기술의 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표준화된 성과 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성과를 평가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연구실을 벗어나 실제 의료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기 어렵다. 따라서, 디지털 전환의 성공을 위해서는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모니터링 체계와 현장 적용성 강화 방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4. 공공병원의 질적 역량 강화 한편 디지털 기반 필수의료의 지속성과 기대효과 달성을 위해서는 필수의료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하는 공공병원의 진료역량 등 질적확충 방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 19 초기부터 대응에 침여한 지방의료원은 중증진료 역량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우수한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더라도 필수의료 현장에서의 연계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으로는 협력병원의 진료 역량 강화를 위해 디지털 기술의 적극적인 활용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진료 역량을 회복하고 장기적으로 공공과 민간의 연계 협력을 촉진해야 할 것이다.
5. 의료기관 디지털 성숙도 향상을 위한 정책 제도 마련 그렇다면 개별 병원들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어떤 변화와 노력이 필요할까? 단편적인 기술 도입이 디지털 전환의 본질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진정한 디지털 전환은 병원이라는 조직을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맥락에서 재구성하며, 병원의 정체성과 역할에 영향을 미치는 다차원적인 변혁이어야 한다. 이는 병원의 역할이 기존 의료 제공자에서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가치 제공자로 변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디지털 전환의 시작은 특정 기술을 유행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디지털 사고방식을 내재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운영 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병원의 리더와 관리자들은 ‘어떤 기술을 도입할 것인가’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병원이 수행해야 할 역할과 새로운 가치 창출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거버넌스, 리더십, 조직 문화 혁신, 기술적 도입 전략, 데이터 관리 시스템 등이 마련되어야 하며, 디지털 전환 초기 정부차원에서 개별 기관의 디지털 성숙도를 제고하기 위한 기준과 방향 제시를 통해 제각각 추진하는 디지털전환 시 발생가능한 낭비적 요소를 줄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 결론 필수의료 분야의 디지털 전환은 보건의료 디지털화의 출발점이자,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진료의 질을 높이고 의료 시스템의 효율성을 개선하는 첫 걸음이다. 이 단계에서 디지털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그 효과는 전체 헬스케어 체계의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필수의료분야 디지털 전환이 성공하려면 기술적 혁신과 커스터마이징, 기술의 운영에 필요한 정책적·제도적 지원, 재정적 조치 등의 검토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와 환자의 데이터 접근 권한을 보장하면서도 의료기관 간의 데이터 공유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이미 보유한 기술을 잘 통합하고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개별 의료기관의 분절된 노력을 체계적으로 통합하고, 재정적·법제도적 과제들을 관리하며, 전략적인 디지털 전환 방향을 제시하는 국가단위의 디지털 의료관리 거버넌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 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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