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혈우병 치료 지속 여부 ‘고민중’
진료부원장 주재 회의…최근 5년 새 수억 진료비 삭감 대책논의
“지속 시 환자 진료 일시 중단” 결정…관련 환자들도 ‘좌불안석’
문영중 기자 기사입력  2017/08/0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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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신보】‘풍요 속 빈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국내 혈우병 환자들의 처지 같다. 치료비가 지원되고는 있지만(풍요) 응급 상황 시 갈 수 있는 선택지가 갈수록 줄어들고(빈곤) 있어 문제다.

 

현재, 국내서 혈우병을 적극 치료하는 빅 5병원은 신촌 세브란스병원<사진>이 유일하다. 3차 의료기관으로는 경희의료원, 대전을지대병원 정도다.

 

혈우병 진료비 칼질에 세브란스병원 마저 흔들

 

이런 가운데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혈우병 진료 지속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으로 확인, 충격을 주고 있다. 이유는 진료비 청구액 ‘칼질’ 때문이었다. 어렵게 치료해 놨더니, “왜 쓰지 않아도 되는 약을 썼느냐?” 등 다양한 이유를 든 청구액 삭감뿐이었던 것.

 

신촌 세브란스병원 A 교수는 “지난해 초 진료부원장 주재로 혈우병 삭감과 관련 회의가 있었다”고 확인했다. 지난해 1월 진행됐던 회의에는 혈우병을 주로 진료하는 혈액내과, 소아혈액종양과 의료진들과 병원 심사팀장, 의료부원장 등 이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5년간 약 4억 원가량의 진료비 삭감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13년에만 1억 7,000여만 원이 삭감됐다. 이후 2015년 9~12월 청구액 중 일부(2.3억)가 삭감, 이에 대한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합병증, 응급상황, 또는 항체 환자 수술 등 혈우병을 제대로 치료, 관리하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마저 삭감 문제로 진료 여부를 고심했던 것이 확인된 셈이다.

 

그동안 삭감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경희대병원도 현재,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주대병원은 수년 전 7억 원 가량의 진료비가 삭감되자 혈우병 진료를 포기했다. 삭감 금액은 보통 수 억원에 달하고 이익은 거의 없어, 혈우병을 치료하는 대다수 대형병원은 이 때문에 고민이 많다.

 

A 교수는 “삭감을 이유로 의료진들이 소집되기는 당시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기분이 언짢은 동시에 ‘우리병원도 흔들리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A 교수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는 ‘삭감이 반복된다면 ‘일시적’(잠정)으로 진료를 중단하고 이후 자유로운 진료가 보장되면 그 때 다시 진료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물론, 당시 회의에서는 환자를 계속 봐야 한다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이 같은 회의 후 세브란스병원은 혈우병 치료를 방어적으로 진행했다.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기 보다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 것.

 

회의 후 의료계 안팎에서는 세브란스병원이 ▲1년간만 혈우병 환자 치료를 유예키로 했다 ▲혈우병 성인 항체 환자는 혈액내과에서 1년간 치료키로 했다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A 교수는 “그렇다고 환자를 오지 말라고 하거나 온 환자의 진료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면서 “단지 삭감을 우려해 환자를 다른 과로 전과시키는 등 ‘방어’적인 진료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실은 환자들에게서 확인됐다. 혈우병 환우회 단체인 코헴회 한 임원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삭감 건으로 회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회의 후 세브란스병원이 환자를 보지 않았던 것 맞다”고 말했다.

 

A 교수는 국내 혈우병 치료 가이드라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국내 항체 혈우병 환자 매우 적고(40명 내외) 이에 따라 관련 데이터도 충분하지 않아 가이드라인에 개인적 경험이 너무 많이 반영돼 있다는 지적이다.

 

혈우병 치료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지정 병원을 정하고 환자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코디네이터를 둘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정병원에 일정 부분 혜택을 주고 코디네이터가 운영될 수 있도록 환자 당 상담료가 책정된다면 혈우병 환자들의 삶의 질이 지금보다 훨씬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세브란스 치료 중단 소식에 혈우병 사회 흔들

 

세브란스가 혈우병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혈우병 치료 여부를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는 환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 혈우병 환자는 “항체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은 세브란스병원 정도밖에 없다”며 “그런데 치료를 한다 못 한다 하면 아주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응급상황이 아니면 상관없지만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환자들이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게 이 환자의 평가다.

 

혈우병은 눈에 보이는 출혈도 문제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출혈(뇌출혈 등)이 더욱 문제고 세브란스병원은 이 부분과 관련된 질환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이 환자는 “세브란스병원 혈우병 치료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는데, 삭감 때문으로 안다”고 밝히고 “이는 어제 오늘의 문제 아니다. 병원 경영진을 탓할 일도 아니다. 의료진과 심평원 등 정부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 문제 해결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코엠회 임원은 “세브란스는 병원 특성상 약자를 많이 보호해 주는 곳 이었다”며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하는, 혈우병 치료를 처음으로 시작한 ‘상징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국내 혈우병 치료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는 의료기관 마저 삭감으로 휘청이고 있는 지금, 더 이상 대책 마련을 미뤄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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