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 날, 일요일을 보내며
후생신보 기사입력  2017/03/2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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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규연 교수(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 후생신보

【후생신보】주중에 정신없이 바빠서인지 토요일 저녁 일찍 잠들면서 일요일 늦잠을 잘 수 있다는 느긋함에 마냥 기분이 좋다. 잠을 깨우는 핸드폰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침 8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다. 새벽에 온 산모가 진행이 돼서 30분에서 한 시간 내로 분만이 될 것 같다는 전공의 선생님 설명에 부스스 일어나 대충 세수하고 운전대를 잡는다. 보통의 일요일 아침에 비해 차가 많은 편이라 오늘 날씨가 좋아 놀러가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생각하니 갑자기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는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분만실에 도착해 보니 산모가 막 힘주기를 하고 있다. 곧 분만되겠지 하고 기다리기를 3시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단잠을 자야하는 일요일 아침에 답답한 연구실에 앉아 멍하니 3시간을 보내고 나니 영 기분이 안 좋다. 분만실로 가서 내진을 해보니 아직은 더 있어야 분만이 되겠지 싶다. 집에 갈 것인지 기다렸다가 분만을 하고 갈지 고민이 된다.

 

인생은 고민과 선택의 순간이 연속된다는 것이 맞나 보다. 10여 분간 고민 끝에 그래 집에 가자, 갔다 다시 나오더라도 편하게 쉬자고 결정하고 운전대를 잡는다. 집에 도착해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있는데 다시 울리는 당직 전공의 선생님의 전화, “교수님, 오셔야 되겠습니다, 30분 정도 후에 분만 되겠습니다” 팔자려니 하고 먹던 숟가락을 던져 놓고 다시 병원으로 향한다.

 

주차 요원 아저씨가 “아이고 교수님, 좀 전에 들어가신 것 같은데.. 또 나오셨네요” 하며 웃으신다. 얼른 내진을 해보니 태아가 큰지 분만까지는 시간이 걸리겠다 싶다. 너무 힘들어 하는 산모 곁에 앉아 전공의 선생님과 같이 힘주기를 도와주기를 1시간 즈음, 산모의 엄청난 비명소리와 힘주기를 못해 태아 머리가 산도에 끼인 채 분만이 되지 않아 잔뜩 긴장이 된다. 다행히 태아 심박동이 정상이고 건강하여 몇 번 힘주기를 더 시도한다. 드디어 태아 머리가 보이는데 이런 ! 태아 머리가 만출된 후, 어깨가 나오지 않아 사력을 다해 힘주기를 시도하고 나니 내가 분만한 것처럼 땀이 흥건하다. 신생아가 어지간히 커 보이는 걸로 봐서 4kg 는 넘어 보인다.

 

두 번째 아이 출산이 제왕절개였고 세 번째 출산이 자연분만, 이번이 네 번째 아이 출산이니 의학용어로 하면 VBAC(기왕제왕절개술후 자연분만)이다. 물론 제왕절개술 후 자연분만을 성공하였기 때문에 이번 분만이 좀 더 순조로울 거라는 예상은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제왕절개술 기왕력이 있어 분만과정이 매우 조심스럽다. 혹시나 자궁파열이 되지 않을까 매우 신경이 쓰였던 터라 분만 후 출혈상태 및 자궁수축 상태를 계속 파악한다.

 

생각보다 출혈이 많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쉬고 마무리를 하고 고마워하는 산모와 남편, 산모의 통역을 도왔던 친구의 인사를 듣던 중 신생아 몸무게가 4.5kg 라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놀란다. 아니 왜 이리 아이가 커? 역시 초음파는 오차가 심하군, 어쨌든 산후출혈도 많지 않고 산모상태도 안정적이라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데 벌써 늦은 오후이다. 소중한 일요일 반나절을 보내고 남은 반나절이라도 여유롭게 보내다 월요일 출근 준비를 해야지 싶어 얼른 집으로 향한다.

 

밀린 집안일을 하고 집에까지 싸가지고 간 서류작업을 하고 있는데 또 울리는 핸드폰 벨 소리 ! 이젠 가슴이 콩닥거린다. 도대체 이번에는 무슨 일이지? “교수님, 낮에 분만한 산모가 30분 전부터 출혈양이 많습니다. 혈압은 정상인데 맥박이 빨라지고 얼굴이 창백합니다. 출혈양이 심상치 않습니다. 자궁내 고인 혈종크기가 10cm 정도 됩니다. 혈색소 검사는 나간 상태인데 수혈과 자궁동맥색전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맥박이 급속히 빠르게 뛰기 시작함을 느낀다. “영상의학과에 연락해서 동맥색전술 어레인지 빨리 하세요, 수혈 빨리 시작하고, 마취과 선생님한테 central line 잡아달라고 하고, 곧 갈게요”, 전화를 끊고 쏜살같이 달려간다.

 

한남대교를 세 번째 넘으면서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 주차아저씨의 놀라는 얼굴을 뒤로 하고 분만실로 뛰어간다. 산모의 창백한 얼굴과 놀란 남편의 얼굴을 보니 내 얼굴도 마찬가지로 창백해지는 것 같다. 산모 상태를 먼저 파악하고 동맥색전술을 할 여유가 있다고 판단되어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던 중 심혈관실에서 산모를 옮기라는 연락이 온다. 외국인(중동 국가 중 하나)이고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전화로 이중 통역을 하고 나서야 남편의 얼굴에 안도감이 든다. 동맥색전술을 하고 나니 더 이상 출혈이 되지 않고 모든 활력징후가 안정된다. 분만실로 다시 옮기고 초음파로 확인해 보니 자궁내 혈종 크기도 반으로 줄고, 수혈 덕분에 산모의 얼굴도 혈색이 돈다. 남편이 일하는 대사관의 대사가 직접 방문하여 산모를 잘 봐달라고 부탁한다.

 

산모가 안정된 것을 여러 번 확인 하고 다시 집에 도착하니 일요일 봄날의 따뜻한 햇살은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 짙게 깔려있다. 몇 시간만 있으면 월요일이다. 늦은 저녁을 먹고 월요일 출근준비를 하며 봄날의 일요일은 참으로 잔인하네.... 푸념을 한다. 그래도 타국에서 힘든 출산을 하고 고마워하는 산모와 남편, 의사소통은 전혀 안되지만 딸의 상태가 좋아진 것을 알고 안도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산모의 친정어머니를 보니 정신없고 힘든 일요일이 다 지나가도 오히려 나에게 위로가 되니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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