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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꿰매기의 달인이 돼라

후생신보 | 기사입력 2016/02/22 [15:53]

(4) 꿰매기의 달인이 돼라

후생신보 | 입력 : 2016/02/22 [15:53]
▲ 박성우 전공의(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후생신보

성형외과 의사로 수련 받는데 기초를 꼽으라고 하면 봉합이 아닐까. 물론 미적 감각과 해부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일지도 모르지만 그 모든 것에 선행되어야 하는 기초는 결국 봉합이다. 성형외과 수술도 다양하기 때문에 봉합이 중요하지 않은 수술도 더러 있다. 하지만 피카소의 전위적인 그림도 결국 충실한 기본에서 출발했던 만큼, 성형외과 또한 봉합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모든 기술이 처음부터 익숙할 수는 없다. 1년차 전공의가 봉합에 익숙해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드레싱 제품에다 한 땀 한 땀 연습을 한다. 사람 살결보다 훨씬 말랑말랑한 드레싱에 6-0 에칠론 실을 이용한다. 일직선으로 줄을 긋고 칼집을 낸 다음 봉합을 하는 것이다. 마치 초등학교 때 글씨 연습하듯 줄을 맞춰 하다보면 우선적으로는 기구가 손에 익게 된다. 두 번째, 수술장에서 선배의 지도 아래 실습하는 것이다. 한 땀 한 땀 긴장된 손으로 실제 살결을 꿰매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응급실에서 열상 환자들이 왔을 때 스스로 봉합하면서 상처 봉합의 경험을 쌓는 것이다. 그렇게 수천 번 꿰매다 보면 어느새 기계처럼 꿰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제각각인 살결들

 

한 땀 한 땀 꿰매다 보면 가죽 가방을 만드는 공방이 떠오른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했다 해도 가죽 가방을 만드는 공정 자체는 노동집약적인 과정이다. 동물의 가죽은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고 한다. 어떤 가죽은 두껍고 질기고 또 어떤 가죽은 피부병 때문에 좀먹은 곳이 있고 반대로 매끈한 최상품도 있다. 가죽의 개별적 특성을 파악하고 원하는 가방을 만들기 위해 재단하고 배접하는 과정 자체를 일괄적으로 통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손이 많이 가는 가죽 가방의 가격이 비싼 것이 아닐까.

 

성형외과의 봉합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살결은 제각각이다. 특히 연차가 올라가면서 수술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그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매끈하고 박리가 잘되는 살결이 있는가 하면 지방도 단단하고 피부도 단단해서 메스마저 잘 들어가지 않는 살결도 있다. 80대 노인의 축 늘어진 살결이 있는가 하면 생후 100일이 안 돼 탱글탱글한 살결도 있다. 살결의 특성에 맞추어 최종적으로 매끄럽게 봉합하는 것이 수술의 기본일 수밖에 없다.

 

층층에 맞추어 봉합하는 것, 즉 ‘레이어 바이 레이어Layer by Layer’라 불리는 요령이 있다. 피부는 맨 위 표피층부터 시작하여 진피층, 지방, 근막, 근육 등 케이크의 층처럼 구분이 되어있다. 이런 해부학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수술에서 매우 중요한데, 마지막 봉합 역시 각각의 층별로 봉합하거나 혹은 층을 한 번에 묶어서 봉합하는 방법 등이 상황에 따라 다르다.

 

흉터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각의 층은 층별로 봉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육은 근육끼리 봉합하고 근막은 근막끼리 봉합하고 피부는 피부끼리 봉합한다. 그래야 수술한 부위가 움푹 들어가거나 바닥에 눌러 붙은 것 같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방수가 될 정도의 봉합, 영어로는 ‘워터타이트Watertight’이라 불리는 기초가 있다. 상처를 봉합했는데 울퉁불퉁하고 피부가 울면 흉터가 보기 싫게 생긴다. 각각의 면을 매끈하고 접합하듯이 봉합하는 것, 즉 물 한 방울도 침투하지 못할 정도로 단단하게 꿰매는 것이다. 이는 주로 진피층을 봉합할 때 표현한다.

 

얼핏 보기에는 피부에 보이는 실밥 자국이 가지런하고 예쁘면 잘 꿰매진 것이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진피층을 어떻게 꿰맸는가가 중요하다. 녹는 실을 이용해서 상처 면의 높낮이와 장력을 잘 분산시켜 봉합해야지 흉터 예방에도 좋고 상처도 빨리 잘 아문다. 가죽 가방에서 눈에 보이는 표면의 박음질보다 가방의 뼈대를 만드는 배접과 눈에 보이지 않는 안쪽 박음질이 중요한 것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녹는 실을 이용해서 진피층만 훌륭하게 꿰매놓으면 그 자체로 이미 90%는 완성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한다. 몇몇 의사들은 마무리로 피부를 꿰매지 않고 의료용 본드나 테이핑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 실밥 자국이 남지 않는 장점이 있다.

 

다소 느슨하게 피부를 괴롭히지 않고도 장력을 유지하는 정도. 성형외과 전공의로 봉합에서 꾸중을 제일 많이 듣는 부분이다. 우리가 얼굴 등에 쓰는 실은 6-0 또는 7-0 정도의 규격인데 두께가 0.05mm에서 0.07mm이다. 어린아이도 힘주고 끊으면 툭하고 끊어질 정도이다. 얇은 실을 이용해서 제일 겉 피부를 꿰매는 데 힘을 조금이라도 세게 주면 잘 끊어진다. 꽉 꿰매는 것과 느슨하게 꿰매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렵냐고 묻는다면 느슨하게 꿰매는 것이라 답하고 싶다.

 

1년차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이 적정한 긴장도에서 느슨하게 꿰매는 것이었고 이는 연차가 올라가면서도 여전히 어렵다고 느꼈다. 상처에 실밥 자국이 남는 대부분의 이유는 봉합할 때 너무 세게 조여매서 그렇다. 교수님 표현을 빌리자면 “피부에 살짝 얹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봉합이다. 순전히 손끝의 감과 경험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마치 초밥 장인이 손에 적당량의 밥을 알맞게 쥐는 것과 같았다. 한 점 손에 쥘 때마다 밥이 과도하게 눌리지 않으면서도 모양을 유지할 수 있게끔 말이다. 자신이 의식하기도 전에 미세하게 실의 긴장도를 조절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성형외과 의사가 다 되었다고 할 만하다.

 

나아가 미세문합술이라고 하여 1~2mm 정도 두께의 혈관을 사람 손으로 꿰맬 수가 있다. 성형외과 재건수술에 이용되는 유리 피판술뿐만 아니라 간이식수술에서 혈관을 이을 때 거대 현미경을 통해 봉합한다. 이때 쓰이는 실은 9-0, 10-0 정도 규격이다. 0.03mm와 0.02mm의 굵기인데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가 보통 0.06mm에서 0.08mm이다. 머리카락 굵기의 반절도 되지 않는다. 수술 중 한 번 읽어버리면 맨 눈으로는 도저히 찾기 힘들 정도다.

 

현미경으로 보면 큼지막하게 확대되어 보이는 혈관이지만 겉에서 보면 깨작깨작 거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그 풍경은 직접 봐야 매력이 있다. 성인의 2~3배정도 크기의 육중한 현미경을 수술 부위에 두고 두 명의 서젼이 마주보고 앉는다. 이어 이식할 장기나 피판을 떨어지지 않게 잘 위치시킨다. 대략 이어폰 줄 굵기 만한 혈관을 잇기 시작하는데 그 잇는 방법에도 다양한 기술이 상황에 따라 바뀐다. 원통형 모양을 따라 8땀에서 15땀 정도 그 굵기와 혈관 탄력에 따라 꿰맨다. 수술 현미경의 경우 보통 4배에서 40배까지 확대가 되기 때문에 최대 배율에서는 거즈의 미세한 구멍까지 큼지막하게 보인다. 반면 미세한 손 떨림도 지진처럼 느껴질 정도다. 첫 미세수술 어시스트를 섰을 때 긴장한 탓에 현미경을 통해 본 나의 손가락이 마치 파킨슨병 환자의 손처럼 떨리는 것 같았다. 여타 다른 수술에서 볼 수 없는 기가 막힌 풍광을 자랑하는 수술 현미경 속 세상이다. 현미경을 앞에 두고 첫 미세수술 어시스트를 섰을 때의 두근거림은 아직도 생생하다.

 

미세수술은 성형외과 고유의 영역은 아니다. 흉부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역시 미세수술을 그 안에 품고 있다. 하지만 미세수술을 빼놓고는 성형외과를 논할 수 없기에 가히 꿰매기 장인의 마지막 단계라 일컫는 게 않을까.

 

서젼의 기본인 봉합. 하지만 더 정교하고 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성형외과의 봉합이 특별하다 생각한다. 응급실에 턱을 찧거나 어딘가에 부딪혀 상처가 난 꼬마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이 외친다. “성형외과 선생님 좀 불러서 꿰매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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