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미용과 재건
후생신보 기사입력  2015/12/2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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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의 의과대학과 1년의 인턴수련을 거쳐 서울아산병원에서 성형외과 전공의 수련을 받는 사이 '파워블로거'로 또 신간 '인턴노트'의 저자로서 글쓰는 성형외과 의사로도 입지를 다지고 있는 박성우 전공의는 의사이자, 갓 출사하는 젊은이의 시각으로 당신이 모르는 성형외과와 국내 최대 규모 수련병원에서 펼쳐지는 레지던트 수련기를 소개한다

 

▲ 박성우 전공의(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종합병원에는 협진 또는 협의수술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서로 다른 두 분야의 서젼(surgeon)들이 한 사람의 수술에 동시에 또는 차례로 참여하는 경우다. 암수술의 경우 간이나 위, 대장 등에 발생한 암이 주변으로 전이되면서 같이 절제해야하는 경우 종종 협진 수술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것이 성형외과 협진 수술이다.

 

생각보다 잦았던 협진 수술 중에는 '성형외과 장인이 꿰매주는 상처 봉합'이 있었다. 흉터에 극도로 예민한 환자의 경우 다른 과에서 수술 받고도 배나 팔, 가슴 등에 상처를 봉합할 때 꼭 성형외과 의사를 불러달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러면 이미 주요 수술은 다 끝나고 성형외과 의사가 상처만 봉합하러 들어간다. "아이고, 그냥 선생님네 쪽에서 봉합하셔도 되는데 왜 꼭 성형외과한테 부탁할까요? 저희보다 더 잘하실 텐데요." 우리 쪽에서 미안한 기색을 보인다. "그러게요. 환자가 수술보다 흉터에 더 예민해서요. 그래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멋쩍게 답이 돌아온다. 꿰매기 장인의 품격이 느껴지게 한 딴 한 땀 정성들인 봉합과 함께 수술이 끝나면 환자는 들러리 아닌 듯 들러리인 우리에게 매우 고마워한다.

 

한 편으로는 반복적인 복부수술 혹은 복막염이나 상처감염으로 어른 손바닥만 한 복부의 상처가 안 닫히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배는 골칫덩어리 뱃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막, 복부근육, 근막, 연부조직 등등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겹의 복벽에 결손이 있거나 다른 합병증 등의 이유로 문자 그대로 '배가 닫히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

 

"성형외과에 연락 좀 해봐. 여기 환자 배가 안 닫혀!"

 

수술실에 도착하면 복압을 견디지 못하고 창자가 막 삐져나오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양쪽에서 당겨도 상처가 맞닿지 않기도 한다. 때로는 복압을 낮추는 처치 등과 함께 장기의 붓기가 빠지기를 기다리며 중환자실에서 관찰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으로는 그냥 당겨서는 맞닿지 않는 복부를 여러 겹의 '살을 발라서' 피판수술로 당겨 해결하기도 한다. 성형외과에는 '복벽 재건 Abdominal wall reconstruction' 이라는 분야가 따로 있다. 이렇듯 성형외과 의사는 때로는 배의 상처를 미용적으로 꿰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닫히지 않는 상처투성이 복벽을 재건하기도 한다.

 

아마도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성형외과는 미용수술만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인 성형강국인 한국에만 존재하는 선입견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회에서도 그러하다. 성형수술을 크게 '미용수술''재건수술'로 나눌 수 있다. 미용수술은 우리가 흔히 아는 미모를 업그레이드하는 수술들을 말한다. 대중화된 성형인식 덕분에 쌍꺼풀 수술, 코수술, 가슴 수술 이렇게 단순히 해당부위에 수술만 갖다 붙여도 미용수술로 우리는 알아듣는다. 재건수술은 정상적이지 않은 부위를 정상적인 형태로 일궈내는 수술을 말한다. 선천적인 기형이나 사고 혹은 암수술 등으로 발생한 '결손'부위에 정상적인 '형태''기능'을 갖추도록 하는 과정이다. 이런 환자들의 경우 대개 병의 원인상 종합병원을 먼저 찾기 때문에 재건 수술은 거의 종합병원에서 이뤄진다.

 

"너는 실업계니 인문계니?"

 

이 질문은 곧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라 성형외과 레지던트하는 동안 주어졌던 질문이었다. 대개 미용수술의 경우 개업한 병원에서 수행했기 때문에 그 쪽에 뜻을 두면 실업계라고 했다. 반대로 종합병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경우 재건 수술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그 길을 목표로 하고 있으면 인문계라고 한다. 성형외과 의사로서 개업가에 의사로 사는 삶과 종합병원에 남아서 교수로 사는 삶이 매우 상반되기 때문에 그렇다.

 

미용과 재건의 서로 다른 행보는 역사가 제법 깊다. 20세기 초중반 미국과 유럽에 소위 뷰티 닥터(beauty doctor)라고 불리는 허가 받지 않은 시술자들이 살롱(salon)을 근거지로 성행했다. 간단하고 빠른 방법으로 '예뻐지는 방법'을 신문이나 여성잡지를 통해 홍보하고 비싼 돈을 받고 시술을 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항하기 위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성형외과 의사로 재건과 미용을 모두 수련 받은 전문의들이 '성형외과 학회'를 창설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미용에 더 관심이 많았던 탓에 올바른 인식을 퍼뜨리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 사회도 불과 20년 전까지만 하여도 미용실이나 일반 가정집에서 파라핀주사나 불법 쌍꺼풀 수술을 시행하는 '미용 아줌마'들이 꽤나 성행했다. 지금도 여전히 종합병원에는 그 때 코나 이마, 뺨에 파라핀 주사 맞은 뒤 제거해달라고 오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한국이나 그외 영국, 미국에서도 성형외과의 참모습 중 재건수술에 대한 인식을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학회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관심이 더 많은 것은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보일까 홍보하는 미용수술일 수밖에 없다.

 

성형외과라고 부를 수 있는 영역, 즉 근대적 성형외과의 역사는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현재는 우리가 당연시 받아들이는 의학의 여러 갈래들이 오래전에는 하나로 통합되어 있었다. 성형외과 역시 마찬가지여서 단편적인 기록들을 통해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 중에 하나는 인도 무굴 제국 당시 시행한 이마피판술을 이용한 코 재건이다. 16~17세기 당시에는 강도나 전쟁포로의 처벌 중에 코를 절단하는 행위가 성행했다고 하고, 이에 인도에서는 코를 재건하는 수술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성형외과의 탄생이 코를 재건하는 고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간간이 내려오는 수술들은 바야흐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성형외과의 기틀이 마련이 된다. 당시 군사들은 참호 속에서 몸을 피신하면서 전투를 했던 탓에 유난히 얼굴에 외상이 많았다고 한다. 참호 속에 있다가 얼굴만 빼꼼 내밀다가 총상을 입는 경우였다. 1차 세계대전 도중 흉측한 얼굴을 한 병사들의 재건을 위해 1917년 영국에 길리스 (Harold Gillies)박사가 퀸스 병원 (Queen's hospital)에 안면재건센터를 구축하면서 근대 성형외과의 모태가 되었다. 비단 성형외과 뿐 아니라 의학의 발전은 전쟁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전쟁 전후로 급격한 발전을 이루는 의학이지만 성형외과는 그 중에서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 태어난 학문이다.

 

그런 태생적 배경을 가졌기 때문에 초창기 성형외과 의사들은 무엇보다 재건에 관심이 많았고 뷰티닥터들과는 차별을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그런 구분 없이 미용수술 역시 초창기 재건영역만큼이나 성형외과의 영역으로 포용하고 알리고 있다. 경험 많은 서젼들은 늘 후배들에게 '재건수술과 미용수술의 극의는 맞닿아 있다'고 가르친다. 두 영역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결손을 정상으로 만드는 과정이나 정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과정이나 방법과 원리는 통한다는 것이다. 전해진 이야기로는 길리스 박사 역시 안면 재건을 시작하면서 3년간 미술학교에서 얼굴 스케치를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늘 성형외과 의사 의술뿐만 아니라 창의성과 예술적 감각도 좋아야 한다며 가르침이 내려오는 것 같다. 성형외과의 참모습이 '재건수술'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재건의 아름다움'이 성형외과 속에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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