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48
후생신보 기사입력  2015/05/0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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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가 죽음을 부르다 - 구스타브 아돌프 2

 

독일의 북방이 개신교인 반면, 남방은 천주교인 이유 속에 구스타브 아돌프 2(Gustav II Adolf, 1594-1632)가 있습니다. 그는 스웨덴을 강국으로 만든 왕으로 북방의 사자혹은 설왕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신성 로마황제의 위협을 물리치기 위해 30년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연승을 거두면서 뮌헨까지 남하했으며, 마지막 뤼첸(Lutzen)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전사로 더 이상의 남하는 불가능했으며, 독일의 북방만이 개신교의 영향에 있게 되었습니다.

 

9(Carl IX, 1550-1611)와 두 번째 부인 크리스티나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신교의 영향 속에 왕이 되기 위한 훈련과 교육을 받았습니다. 스웨덴과 독일말을 자유롭게 구사했던 그는 8세에 상원의 모임에 참여하였고, 15세에 왕좌에서 연설을 했으며, 17세에 스웨덴의 왕이 되었습니다. 당시 국가의 내부와 외부 모두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수상으로 임명한 28세의 악셀 옥센셰르나(Axel Oxenstierna) 백작과 함께 스웨덴을 개혁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 재판소를 세우고, 외국 자본을 도입하여 무역을 개발하고, 풍부한 광산을 개척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덴마크, 러시아, 폴란드를 상대로 전쟁을 하여 발트해를 자국의 내해로 하는 영토확장 정책에 정진했습니다. 그의 전술은 총포와 갑옷을 간소화 하여 신속한 전투를 이용하고, 대포의 파괴력을 증각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총기병과 돌격기병을 합쳐서 사격 후 돌격하는 전술은 당시 획기적인 것으로 연승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교에게 첫 승리를 안겨다 주었던 1631917일 브라이텐펠트 전투에 대한 기록을 보면 전술 이전에 신이 함께 한다는 신앙에 기초한 리더쉽이 있었습니다. ‘그는 병사들과 함께 땀흘리고,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갈증에 시달렸으며, 열다섯 시간이나 말에서 내리지 않은 적도 있었다. 피와 오물 따위는 그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피가 발목까지 차오르는 전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한 가지 약점은 근시였습니다. 매우 심한 근시라서 심각한 시각장애가 있는 정도였지만 그 때에는 어느 정도 심한 지 측정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역사적 자료에는 해가 갈수록 근시로 인해 그의 머리는 점점 웅크리는 자세가 되었고, 푸른 눈은 사시가 되었다.(Over the eyars, his head took on a stooped posture, and his near-sighted, light blue eyes squinted.’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

16321216일 뤼첸 전투를 기술한 기록을 보면 뤼첸시가 불타고 있을 때 심한 안개와 연기 속에서 잘 볼 수 없게 된 그는 자신의 부대와 떨어져 말을 몰고 적군의 기병대로 향하게 되었다. 양측에 3천명의 사상자를 낸 그날 밤의 전투에서 그는 적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고 되어 있습니다.2

 

근시 때문에 시각에 장애가 있었지만 그 장애는 스웨덴을 강하게 만드는 그의 열정에 방해가 되지 못했습니다.

 

 

1. http://www.koni.onlinehome.de

2. Scholtz S. Augenblick! Saarbrucke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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