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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카피라이터

후생신보 | 기사입력 2015/08/27 [13:58]

6) 카피라이터

후생신보 | 입력 : 2015/08/27 [13:58]

▲ 선한수 前 대한전공의협의회 정책이사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최근 텔레비전 광고를 보던 중 나를 감탄하게 만든 문구가 하나 있었다

. "아이폰이 아니라는 건, 아이폰이 아니라는 것" 통상적인 휴대폰 광고에서는 통화 음질이 얼마나 깔끔한지, 카메라 화질이 얼마나 훌륭한지, 구동이 얼마나 빠른지를 다른 제품과의 비교에 의해 표현한다. 카메라 화소가 1000만이라고 광고하는 것은 다른 제품은 1000만이 되질 않으니 이게 더 좋은 제품이라는 비교 우위를 인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저 광고를 보고 있으면 해당 기업의 제품은 타 사의 제품보다 비교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교 불가라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제품은 타 사 제품보다 훌륭합니다.' 라는 주장이 아니라 '우리 제품은 그냥 우리 제품이에요. 타 사 제품과 비교하지 마세요.' 라는 주장을 저 한 줄의 문장에 넣은 셈이다. 아이폰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 다르겠지만 저 광고만큼은 문구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때 유행했던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라는 문구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가구의 범주를 혼란스럽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던 것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비문(非文)같기도 하고 말장난 같기도 한 이런 광고 문구들이 우리의 머릿속에 끈덕지게 붙어 있는 것을 보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정확한 데이터나 사실 분석만이 아닌 듯하다.

 

과거 의사들은 홍보 문구의 엄청난 힘을 경험한 바 있다. 의약분업 시행 당시 정부는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약의 조제와 복약지도를 약사의 업무로 구분하기 위한 슬로건이었지만, 얼핏 들으면 의사가 진단까지만 하면 약사가 약의 전문가로서 약을 결정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줄 수 있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마치 랩의 라임을 맞추듯이 무한 반복되어지던 저 슬로건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그렇다면 이제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대한의사협회에서 내걸었던 홍보 문구 중에 멋진 표현이 있었을까? 딱히 떠오르지 않아 여러 방법으로 검색도 해봤지만 감성을 찌를 만한 문구는 보이지 않는다. 다들 평생을 의사로 살아오면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 따른 사고방식을 유지하다보니 늘 논리적인 홍보 문구만 내걸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설령 옳은 말일지언정 기억에 남을만한 말은 없었던 것이다.

 

홍보 문구가 반드시 합리적이고 일목요연할 필요는 없다. 오래 전 타이레놀과 아스피린의 홍보 전쟁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타이레놀은 아스피린이 위장관계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공략하여 안전한 진통 해열제라는 이름으로 홍보하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효과가 크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그 이후 반전이 발생했는데 아스피린(바이엘) 측에서 타이레놀 측의 광고에 반박 광고를 개제하면서 도리어 아스피린의 판매량이 급감하고 말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저렇게 발끈하는걸 보니 정말 아스피린이 위험성을 가진 약인가보다라는 의구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타이레놀과 아스피린 모두 사실에 근거하여 홍보를 하였지만 한 쪽에서는 성공하였고, 한 쪽에서는 실패하였다. 사례에서 보듯이 홍보에 사실 여부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최근 대한의사협회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의학 지식이 없는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가해선 안된다는 내용이나, 의료인과 환자의 안전을 위해 의료인 폭행 가중처벌법이 필요하다는 내용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에서는 구구절절 객관적 사실만을 나열하면서 국민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멋진 홍보 문구가 아닐까?

 

의사들은 늘 이야기한다. 이토록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국민들은 의사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니 억울하다고. 당연하다. 하지만 의사들은 이 억울함을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간극은 더 벌어지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생각이 에너지다' 등을 대히트시킨 광고홍보 전문가인 박웅현 씨가 쓴 책을 보면 그의 사고방식이나 문장의 해석 방식은 의사들이 논문을 읽고 텍스트를 읽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 수십 년을 의사로 살아온 사람들이 회의실에 모여서 홍보 방식을 정하는 것은 그만 하자. 의사들에게 관심도 없는 값싼 홍보 기획사에 흔해빠진 문구를 받아오는 것도 그만 하자. 어쩌면 지금 의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의사들의 입장을 이해시켜줄 멋진 한 줄 문장일 지도 모르겠다. 대한의사협회에도 카피라이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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