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997년 그리고 2015년
후생신보 기사입력  2015/07/1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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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수 前 대한전공의협의회 정책이사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한동안 온 뉴스의 헤드라인이 메르스로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그리스 디폴트로 넘어간 듯하다. 우리는 그리스 관련 경제 뉴스에서 IMF(국제통화기금)라는 익숙한 이름을 접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때가 자꾸 떠오르는 이유이다.

 

외환위기 당시 나는 공부보다는 노는 것에 관심이 많던 고등학생이었다. 그러니 외환위기의 본질에 대해 자세히 알 리가 만무했다. 그 때 내가 언론에서 접했던 바에 의하면 외환위기 사태의 원인은 국민들의 과소비와 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 등에 있었다. 국민들이 흥청망청 외화를 낭비한 탓에 외환 보유고가 급감했으며, 결국 그 책임을 국민들이 지고 있다는 인식이었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을 하고, 명예퇴직을 감수하며, 국산품을 애용해야만 국가 경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외환위기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정부에게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계적인 시장 개방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대응, 국제 투기 자본의 움직임에 대한 미숙한 대처, 국가 경제 체제의 근본적 문제 등이 그 원인이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불안한 경제구조 속에서 성실한 국민들의 힘으로 이끌어온 경제 체제가 붕괴되자 정부가 그 책임을 국민들에게 떠넘긴 셈이었다.

 

당시 정부와 언론의 홍보도 문제였는데, 겉으로는 정체기의 일본 경제를 비웃으며 경제 호황을 누리던 상황이었으나 막상 그 안으로는 주가가 갈수록 떨어지고 자금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경제가 흔들리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와 언론은 경제 위기는 없다면서 선을 그었다. 한국 경제는 근근이 유지하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위험성에 대해서 무관심하였던 것이다. 되려 1996년 OECD에 가입하였으니 우리도 이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다며 축포만 터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엄청나게 컸다.

 

시간이 흘러 2015년이 되었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국가는 또다시 국민들, 특히 의료진 탓을 했다. 국가의 초기 대응 실패에 의한 메르스 확산을 민간 병원 잘못으로 돌렸고, 심지어 메르스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에게 ‘메르스 환자 진료 거부시 처벌하겠다’, ‘메르스 미신고시 벌금을 부과하겠다’ 등 비상식적인 발언까지 하였다. 1997년 이후 18년이 지나서도 일관성 있는 책임 전가 행태다.

 

이번 일을 겪으며 외환위기 사태를 몰고 왔던 그 당시 한국 경제와, 지금의 한국 의료계가 많이 닮아있음을 느낀다. 극단적인 저수가 체제 속에서 비급여 항목과 각종 부대비용으로 유지해가는 병원들은 언제 무너지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과도한 의료 쇼핑 문화가 각 병원 유지에 한 몫을 하고 있고, 실손보험이 병원 운영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 상황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다. 메르스 사태를 지나면서 국민들의 병원 이용이 ‘충분히’ 감소하여, 앞에서 언급한 비정상적인 상황들이 작동하지 않았을 때 (의료 쇼핑이 감소하고, 실손보험이 있더라도 병원을 필요 이상으로는 찾지 않게 되었을 때) 전국의 병의원들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음을 경험하였다.

 

이처럼 개개의 의사들은 불안한 상황에서 스스로의 발버둥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여전히 한가하다. 오히려 로컬 성형외과의 외화벌이만 적극 장려하고 있고, 원격의료를 통해 창조경제를 이루어내겠다는 의지만 강력해 보인다. 심지어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인식을 반복하면서 일부에서는 국립 의과대학을 더 만들겠다는 정치적 노림수도 가지고 있다. 메르스 사태로 인해 의료계가 신음하는 형국에서도 이를 빌미로 되려 원격의료를 시행하고자 하고, 국회에서는 대체조제 활성화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그야말로 그 당시 유행어처럼 ‘총체적 난국(total crisis)’이다.

 

우리는 1997년 국가가 느긋하게 외형적 성장에만 치중하면서 여유를 외치다가 한 순간에 국가 경제가 휘청하는 것을 경험하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외환위기의 여파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청년 실업 문제는 지금도 한국 사회의 최대 난제로 남아있으며, 국가 발전의 근간이 되는 이공계 기피 현상 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의료계도 그 당시의 한국 경제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개원가의 어려움과 메이저과 기피 현상 등을 해결할 방책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대한민국 의료계의 디폴트는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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