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38
후생신보 기사입력  2014/12/2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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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는데 보이다 - 망막동맥폐쇄
 
일요일에 50대 남자가 1시간 전부터 갑자기 오른 쪽 눈이 희미해졌다며 응급실로 왔습니다. 두통도, 안통도 없었으며, 눈곱도 끼지 않았습니다. 간신히 눈앞에 손을 흔드는 것 정도를 감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고혈압이 있었지만 조절이 잘 되고 있었고, 당뇨병이나 다른 전신적인 문제는 없었습니다.

오른 쪽 눈의 동공이 약간 커져있었고, 동공반응은 약했습니다. 검안경으로 눈 속을 보니 망막이 허옇게 변해있었으며, 중심에 체리가 있었습니다. 망막의 동맥이 막혔다는 의미입니다. 허옇게 변한 망막의 중심에 시세포만이 존재하는 황반이 위치하는데, 이곳은 망막 아래의 맥락막 혈관에서 공급을 받아 상대적으로 붉게 보이므로 ‘체리처럼 붉은 점’(cherry-red spot)이라고 합니다.

망막동맥폐쇄. 안과 전공의 1년차에게 벅찬 병입니다. 실명의 기로에서 시간을 다투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망막동맥이 막힌 지 15분이 지나면 망막이 허옇게 변하고, 90분이 지나면 완전히 손상됩니다. 1시간 전부터 증상이 있었다니까 응급처치를 해야 합니다.

먼저 선배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선배는 지금 갈 테니까 매뉴얼대로 하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망막동맥이 막혔을 때 풀어보려는 노력은 눈의 압력을 빨리 낮추어 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안압을 낮추면 산소부족 상태에 있는 망막에 혈류가 늘어나서 산소공급이 좋아지고, 운 좋으면 동맥을 막고 있던 혈전이나 색전이 빠져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먼저 산소마스크를 착용시켰습니다. 그런 후 손가락으로 눈알 마사지를 했습니다. 그동안 피검사와 심전도검사를 하고, 이뇨 뿐 아니라 안압 낮추는 효과가 있는 약물인 만니톨 주사를 맞고, 다이아목스를 먹게 했습니다. 그러자 15분이 지나갔습니다. 그런 후 안과로 올라가서 다시 검사용 렌즈를 눈에 대고 압박하고, 떼고를 반복하는 방법으로 마사지를 계속 했습니다. 벌써 거의 25분이 지나갔습니다. 마음은 급하고, 온 몸에 땀이 배었습니다. 마침 선배가 도착했고, 바로 바늘로 검은자(각막)를 찔러서 물을 조금 빼는 시술을 했습니다.

이제 응급처치는 끝났습니다. 환자 눈이 괴로웠을 겁니다. 주무르고 압박하고 찌르고. 그렇게 하면 그 병이 운 좋게 좋아졌을 지도 몰르니까 “좀 보이나요?” 하고 물었는데, 실망스럽게도 환자는 “더 안 보이는 것 같아요.” 합니다. 선배는 혈관촬영(형광안저혈관조영술)을 해 보자고 했습니다.

검사를 마친 후 선배는 망막동맥폐쇄가 맞고, 원인을 찾기 위해 입원해서 내과 검사들을 추가로 받는 것이 좋으며, 앞으로 한 달이 지나면 녹내장이 생길 수 있으니 안과 치료도 계속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환자가 “시력이 돌아올 가망은 없겠지요?” 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병은 가망이 없는 병이에요.’ 대답을 했지요. 그런데 선배가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확히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2주 정도 지나면 시력이 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내일 교수님이 자세히 설명을 해 주실 겁니다.” 하는 거에요.

이 환자가 입원 수속을 마친 후 선배에게 물어보았어요. “환자에게 일부러 희망을 주신 거지요?” 하자 선배는 “희망을 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봐. 그러나 아무 근거 없이 주거나 교수님이 계신데 전공의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 그래서 의사는 공부를 많이 해야 돼. 망막 동맥이 막힌 환자들 4명 중에 한 명은 실명을 하지 않아. 왜 그런지는 내일 나한테 알려줘.” 했습니다. 선배가 이처럼 크게 보였던 때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날 책에서 망막동맥기형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망막은 망막동맥(retinal artery)이 공급을 하는데, 인구 7명 중 한 명은 또 다른 동맥(cilioretinal artery)이 기형적으로 존재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또한 망막동맥이 막힌 환자 4명 중 1명은 이 기형동맥을 가지고 있어서 망막동맥이 막히더라도 중심부를 볼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정상시력은 아니더라도 0.4 정도는 볼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 날 제 땀이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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