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담론을 시작하며
후생신보 기사입력  2015/01/0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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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수 前 대한전공의협의회 정책이사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말은 행동을 견인하는 힘이 있다고 했던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란 상투적인 말에 이끌려 인근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 열람실에는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다.
 
수능 시험이 끝나면 여러 언론사와 학원가에서는 대학 입시 예상점수를 발표할 것이고 어김없이 전국의 각 의과대학들은 자연계 배치표 최상위권을 빼곡히 차지할 것이다. 십 수년 전에 내가 겪었던 바로 그 때처럼.

십 수년 전, 그렇게 의과대학에 들어간 직후부터 수많은 선배들의 조언을 들었다. 학과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동아리 활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술은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무슨 과목에서 낙제를 조심해야하는지, 어떤 교수님 수업에선 절대 땡땡이를 쳐서는 안되는지 등등.. 심지어 본인들도 아직 해보지 못한 레지던트 생활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본과 선배들도 있었다. 그 당시 그 선배들의 말은 진리였고 의대 생활의 나침반과 같았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 때의 그 선배들과 같은 연차가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의 말이 100%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애당초 학교생활을 하는 것에 정답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심지어 플라톤은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자연 사물마저 이데아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했건만! 각종 변수의 집합체인 학교생활에 진리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현상은 의사가 된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겪게 되었다. 각종 정책이나 의료 현실에 대해서 다소 일방적인 의견이 의료계의 중심을 이루어 왔고, 대개 그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거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한 중론을 만들어가는 이들은 거대 집단 일 수도 있고, 각종 정보를 많이 가진 단체일 수도 있으며, SNS나 각종 인터넷 싸이트에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특정 사안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표출하는 이들이 있으면, 그 사람을 “배신자” “혼자만 잘 살려고 하는 인간” “보건복지부에게 잘 보이려고 하느냐” 라는 식의 비난을 하기도 한다. “우리 의사들의 미래를 위하여 힘을 하나로 뭉쳐야한다” 라고 하는 가치관을 전제로 한 가지 의견으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이 한 말로 잘못 알려져 있는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 라는 표현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이 한 말이다. 그는 비겁하게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의 개인적 이익만을 도모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하기 위해 이 말을 했다. 하지만 이 말이 우리 사회에서는 상대와 싸우기 위해서는 소수 의견을 내지 말고 침묵해야한다는 의미로 오용되고 있다.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사들 대부분은 의료 영리화를 반대하더라도, 의료 영리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지난해 의사들의 집단 휴무에 대해서도 찬반 여론이 각기 갈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 의사들은 이러한 관점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평소에 정확한 진단 기준과 적응증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옳고 그름(True or false)으로 사안을 판별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변증법에서는 정반합의 원리가 등장한다. 정(these)과 그것에 반대되는 반(antithese)가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합(synthese)이 초월적으로 도출되며 발전해나간다는 의미이다. 즉, 각각의 의사들이 의료 현실과 정책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내고 토론해가는 과정은 의사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의사들의 가치관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인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의사들은 각종 의료 현실이나 정책에 대해서 다수와 다른 의견을 내기에는 쉽지 않은 환경이다. 정책 토론회나 포럼은 그 횟수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그마저도 다수의 일방적 논리로 흘러가기 일쑤이다. 내가 아는 일부 의사들은 대한의사협회가 주장하는 내용과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비인격적인 모독과 욕설을 듣기도 했다.

이제 우리가 변화할 때이다. 서로의 의견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토론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해갔으면 한다. 이러한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의사들은 한층 더 성숙해져 갈 것이고, 더 나아가 일반 국민들의 가치관을 더욱 이해하고 설득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이 칼럼을 후생신보 기자 분에게 의뢰받았을 때, 칼럼 제목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에 대해서 잠시 논의를 했었다. “제목으로 젊은 의사 백서 어때요?” 라는 기자 분의 제의에 나 역시 “그거 괜찮네요”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백서’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백서란 정부나 공공단체가 연구 결과나 정책에 대해서 발표하는 보고서가 아니던가. 과거에 대한전공의협의회와 의사협회 대의원회(당연직)에서 1년 동안 일했을 뿐, 아직 배울 것이 한참 남은 내가 쓴 개인적 글이 어떻게 백서란 제목을 달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난 이 칼럼의 제목을 ‘젊은 의사 담론’으로 하기로 했다. 이 칼럼은 나의 의견일 뿐이다. 하지만 담론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로가 생각하고 의논하고 설득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실천적 방향으로 의견이 정립되어 갔으면 좋겠다.

내 생각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주눅들거나 그에 따라가지 말자.

내 의견을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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