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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90

관리자 | 기사입력 2013/11/11 [14:25]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90

관리자 | 입력 : 2013/11/11 [14:25]

수술 다시 합시다 

후배 정형외과 의사는 라식 수술도 불가능한 고도근시였습니다. 전문의를 딴 후 다행히 눈 속 렌즈삽입술을 받고 안경을 벗게 되었지요. 2년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연휴 동안 일본 여행 중에 갑자기 눈앞에 검은 점들이 생기더니 시야의 한 쪽에 검은 커튼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급히 제게 연락을 했습니다. 지금 바로 돌아갈 텐데 눈을 좀 봐 달라고 했지요. 예상한 대로 한 눈에 망막박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눈을 카메라에 비유하면 망막은 눈 속에 벽지처럼 발라져 있는 비닐 3-5겹 정도의 얇은 필름이야. 눈 속에는 원래 물이 차 있는데, 벽지에 구멍이 생기면 이 물이 구멍으로 스며들어가서 벽지 뒤에 고이게 돼. 그러면 망막은 들뜨게 되고, 들뜬 망막은 볼 수 없게 되지. 이것을 망막박리라고 해.”

서둘러 응급수술을 했습니다. 공막돌륭술이라는 수술입니다. 먼저 눈 바깥벽에 구멍을 뚫고 벽지와 벽 사이에 고인 물을 빼 냅니다. 그런 후 스펀지 조각을 눈 바깥에 대고 눌러서(공막돌륭) 구멍이 있는 벽지에 벽을 붙입니다. 그런 후 구멍 주위를 불로 지지거나 얼려서 딱 붙입니다. 그렇게 하면 더 이상 구멍을 통해 물이 스며들지 않게 됩니다. 남아있는 물은 서서히 저절로 흡수가 됩니다.

다행히 눈 속 렌즈도 제거하지 않았고, 망막도 잘 붙었으며, 시력도 잘 나왔습니다. 그런데 1년 후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또 시야에 검은 커튼이 보이는 것 같다고요. 검사를 했더니 예전에 수술한 곳은 문제가 없었지만 반대편 망막이 크게 찢어졌습니다. 찢어진 부위 주변으로 망막박리가 생겼습니다. 망막박리가 왜 또 생겼냐는 질문은 은근히 제 마음을 찔렀습니다. 저는 후배에게 고도근시는 망막박리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돼서 나도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눈 속 렌즈를 제거해야 하고, 눈 속에 있는 풀 같은 물(유리체)도 제거(유리체절제술)를 해서 문제의 여지를 모두 해결할 거야. 그리고 눈 주위를 실리콘 스펀지로 360도 둘러서 조이는 공막두르기 수술도 같이 할 예정이고. 그런데 그렇게 하면 눈 속에 가스를 넣어야 해. 가스 때문에 백내장이 생길 수도 있어. 그래도 망막을 붙이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해.”

나의 단호한 설명에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수술을 했고, 다행히 망막도 잘 붙었습니다. 후배는 2주를 꼬박 엎드리는 자세로 생활을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했습니다. 목, 어깨, 허리가 모두 끊어질 것 같았지요. 가스는 6주에 걸쳐 서서히 빠져나갔으며, 다행히 시력은 3개월 후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6개월 후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눈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있다는 겁니다. 검사를 하는 내내 제 손은 떨렸습니다. 예전에 찢어진 망막 부위 주변에 작은 구멍이 다시 생겼기 때문입니다. 흉터반응(증식유리체망막병증). 망막박리 수술 실패의 가장 많은 원인이기도 합니다. 흉터반응이란 찢어진 망막이 붙으면서 오그라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변의 망막이 저절로 찢어집니다. 오그라든 정도가 심하면 벽지가 통째로 떨어져버릴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재수술을 해도 망막이 다시 붙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시 붙지 않으면 실명이 되겠지요.

“망막을 두른 스펀지를 새로 생긴 구멍에 맞춰서 조금 조정해야 해. 그리고 망막이 오그라들었기 때문에 실리콘 기름을 6개월 정도 넣어두어야 하고.” 6개월 후 기름을 뺐을 때 망막이 붙지 않으면 이제 그 눈은 기름을 계속 그대로 둘 수밖에 없습니다. 기름을 넣은 눈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후배는 제 앞에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제 눈은 이제 희망이 없지요? 제가 다른 병원을 가 봐야 할까요?” 짧은 시간이지만 후배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격한 감정, 실망, 두려움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침묵이 지나가는 동안 다시 힘을 냈습니다.

“수술을 다시 해 보자. 잘 해 볼게. 원하면 내 스승님을 소개시켜 줄 수 있지만 내가 두 번이나 수술한 눈이니까 상태는 내가 더 잘 알거든.” 수술을 다시 하자는 말은 외과 의사들이 가장 하기 싫은 말일 것입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입니다. 질병의 한 과정으로 어쩔 수 없는 재수술이어도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외과의사 만이, 외과의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말입니다. 이제 머뭇거릴 수 없습니다. 영원히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그 후배 소식을 들었습니다. 큰 키에 호쾌한 드라이버 장타를 날린다고요. 5년 전 기름을 뺀 후 더 이상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분명히 두 눈이 건강하단 뜻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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