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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87

관리자 | 기사입력 2013/10/10 [10:47]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87

관리자 | 입력 : 2013/10/10 [10:47]

요나의 꿈

▲ 미켈란젤로의 요나 , Michelangelo Buonarroti, Jonah, 1511, Fresco, 400x380cm Cappella Sistina, Vatican     © 관리자
요나는 이스라엘의 13대 왕 여로보암 2세(BC 793-753) 때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범죄의 도시였던 큰 성 니느웨로 가서 예언을 선포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니느웨로 가기 싫어서 다시스 행 배를 타고 도망쳤습니다.
 
갑자기 바다에 심한 폭풍이 불어 배가 거의 부서지게 되었습니다. 뱃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신에게 부르짖고,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들을 바다로 내던졌습니다.
 
그런데 배 밑창에 내려간 요나는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선장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당신 어떻게 이렇게 잠을 잘 수 있소? 당신 신에게 부르짖으시오. 행여나 그 신이 우리를 생각해 주어, 우리가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소.”

뱃사람들은 제비를 뽑아서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닥쳤는지 알아보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요나가 뽑혔습니다. “당신은 누구며, 왜 이런 재앙이 닥쳤는지 말해 보시오.”라는 뱃사람의 말에 “나는 히브리 사람이고, 여호와를 경외합니다.” 하며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바다가 점점 더 거칠어지자 그들은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바다가 잔잔해지겠소?” 하자 “나를 바다에 내던지시오.” 차마 그렇게 못한 뱃사람은 뭍으로 되돌아가려고 힘껏 노를 저었는데, 바다는 더 거칠어질 뿐이었습니다. 뱃사람들이 “여호와여, 이 사람을 희생시킨다고 저희를 멸하지 마소서.” 하며 요나를 바다에 던졌더니 성난 바다가 잔잔해 졌습니다.

바다에 빠진 요나는 큰 물고기가 삼켰습니다. 요나는 3일 낮밤을 여호와께 잘못했다고 빌며 분부한 것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큰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뱉어냈습니다.

니느웨로 간 요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40일이 지나면 이 성은 무너진다.” 이 소식이 왕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왕은 백성들에게 선포했습니다. “아무도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 지금부터 범죄를 멈춰라. 그렇게 하면 혹시 이 성이 망하지 않게 될지 어떻게 아느냐.”

요나는 성에서 나와 성이 보이는 높은 곳 그늘에 앉아 그 성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했습니다. 날을 뜨거웠고 박 넝쿨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자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벌레가 와서는 박 넝쿨을 갉아먹었습니다. 날씨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요나는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자 여호와는 “요나야. 네가 박 넝쿨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은 호박넝쿨을 귀해 여기는구나. 그렇다면 이 성에 있는 12만 명의 사람들과 짐승들을 어찌 내가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요나를 삼킨 물고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들은 요나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제 인생이 요나와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초등학생 때 전국 피아노 콩쿨대회에서 떨어지지만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피아니스트가 되었을 것입니다. 피아니스트야 말로 역사를 가로질러 영원한 명작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제 인생 최고의 목표였습니다. 그런 제게 콩쿨의 결과는 참으로 실망스러웠습니다.

그 후 중학생 때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헬기로 여의도 광장에 내려와 설교를 하고 돌아가시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느새 제 꿈은 당대에 세상 어디든지 가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목사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자 저는 도저히 문과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이라면 제 실력으로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의대를 들어가게 된 것은 당시 수재들이 전자공학과를 지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역사를 가로지르지도, 세상을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그저 작은 방에서 저를 찾아오시는 환자들을 보는, 그것도 몸의 아주 작은 일부를 보는 의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의대생 시절에 제 꿈은 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뇌를 다루는 신경외과나 심장을 다루는 흉부외과 의사가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이런 멋진 의사의 길이 너무 험난하다는 것과 또 다른 쉬운 의사의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과의사가 된 것은 험난한 길에서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당시 안과에서도 쉬운 길이 있었습니다. 각막과 망막은 쉬운 길과 험난한 길의 표본이었습니다. 당시 30분 라식 수술비가 2시간 망막수술비의 두 배였으니까요. 군대 전역을 마치기 3일 전까지 저는 각막 전임의가 되기로 한 상태였습니다. 제 인생은 장밋빛 탄탄대로였지요. 그러나 3일 전 망막 전임의로 가야 한다고 통보를 받았을 때 갑자기 바닷 속 깊은 곳에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요나가 생각났지요. 아무리 도망가려해도 도망갈 수 없는 어떤 저 만의 길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외과 선배님이 그러십니다. “그렇게 응급환자도 보고, 힘든 수술을 하면서 대학에 있을 거면 왜 안과했어?” 저는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달랐을 거에요.” 저는 압니다. 망막은 제게 운명과 같은 것이라고. 제 그동안의 꿈들이 제 꿈이 아님은 요나의 꿈이 요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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