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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78

관리자 | 기사입력 2013/07/04 [14:17]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78

관리자 | 입력 : 2013/07/04 [14:17]

전제덕의 하모니카

2009년 12월 KBS 홀 공연에서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이 웅산밴드와 함께 연주했던 ‘광화문 연가’를 한 번 들어보세요. 가수 이문세가 부르는 연가와 또 다른 아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http://www.youtube.com/watch?v=JxO1pNZG6mQ)

하모니카는 기원전 3,000년경의 닝쿠와(Nyn-kwa) 황제가 대나무를 주발모양으로 만든 ‘쉥’(笙, Sheng)이라는 관악기를 만들면서부터라고 합니다. 18세기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쉥을 유럽에 소개하여 풍금, 아코디언과 같은 바람을 이용한 악기들이 만들어졌습니다. 1821년 독일의 시계 제조공 크리스찬 프리드리히(Christian Friedrich)와 루드비크 부슈만(Ludwig Bushman)이 15개의 피치파이프를 묶어서 한 면이 4인치인 네모난 악기를 만들었는데, 건반 없이 연주하는 최초의 악기(문데올린, 독일말로 입이라는 뜻)가 되었습니다.

1827년 독일의 슈텐베르크 시의 트로싱겐(Trossingen, 방직공장 지대)에 한스 크리스찬 메슈넬(Hans Christian Meshunell)이라는 19세의 편물직공 소녀가 아코디언을 개조해서 입으로 불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것이 하모니카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1857년 독일의 24세 된 마티아스 호너(Matthias Hohner)가 트로싱겐에서 자신의 아내와 2명의 직공을 데리고 650개의 하모니카를 만들면서 일반대중에게도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호너(Hohner)사는 세계 최대의 하모니카, 아코디언 제조회사가 되었습니다. 

1989년 ‘세계 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에 시각장애인 사물패 ‘다스름’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의 장구와 꽹과리 실력은 최고였지만 ‘다스름’은 애초 수상 후보가 아니었습니다. 채점은 앉은반(앉아서 하는 연주)과 선반(서서 하는 풍물굿) 점수를 더하는 것인데, 이들은 장애 특성상 앉은반에만 출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탄복한 심사위원들은 즉석에서 ‘특별상’을 만들어 수여했고, 이듬해부터 아예 앉은반과 선반을 따로 시상했습니다. ‘다스름’은 93년에 드디어 이 대회 대상을 움켜쥐었습니다. 이 ‘다스름’에서 장구를 쳤던 사람은 현재 한국 하모니카 1인자인 전제덕입니다. 

전제덕은 출생 때부터 앞을 전혀 못 보는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그는 인천혜광학교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을 갖게 돼, 브라스밴드와 사물놀이를 거쳐 하모니카를 잡았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하모니카를 재즈에 도입한 벨기에의 거장 투츠 틸레망스(Toots Thielemans)의 영향이 컸습니다. 스승도 악보도 없이 오로지 청음에만 의지해 독학으로 하모니카를 불다보니 1분 걸릴 연습이 1시간 걸렸습니다. 입술이 부르트며 한 달에 하모니카 하나를 못 쓰게 만들 정도로 맹렬히 연습했고, CD 하나를 1,000번 이상씩 들어 CD가 망가질 정도였습니다. 덕분에 한번 작업한 음악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전제덕은 서정적인 감수성과 화려한 테크닉을 갖춘 데다 즉흥 연주도 탁월하여 하모니카를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음반에 참여해왔을 뿐 아니라 3장의 음반을 발표해 단순한 소품 악기 대접을 받던 하모니카를 주류 악기로 끌어 올렸습니다.

현대음악 작곡가인 빌라 로보스(Villa-Lobos)의 ‘하모니카 콘체르토’가 작년(2012) 국내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매혹적인 작품이지만 연주하기가 까다로워 세계적으로도 연주된 예가 드뭅니다. 전제덕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악기와 국내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60인조 ‘모스틀리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습니다. 클래식과 팝과 재즈, 그리고 자작곡들이 연주되었습니다.

전제덕의 새로운 음악적 도전인 이 공연은 한국 음악계의 역사적 장면이 되었습니다. 한 뼘 남짓한 하모니카가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만나 2시간 동안 협연하는 것 자체가 유례없는 음악적 사건이었으니까요. 언론과 평단은 ‘하모니카의 재발견’ ‘영혼의 연주’ ‘한국 대중음악을 업그레이드시킨 명반’ 등의 찬사를 쏟아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은 어떤 장난감보다 더 좋은 놀잇감이었어요. 결국 그게 습관이자 생활이자 일이 된 거죠.”

5,000년 전 인간세계에 홀연히 나타난 이 악기가 전제덕을 만나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시각장애인의 희망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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