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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76

관리자 | 기사입력 2013/06/13 [09:58]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76

관리자 | 입력 : 2013/06/13 [09:58]

눈 감고 바둑 두기

중국의 한 아마추어 바둑 기사가 프로기사건 아마추어기사건 상관없이 누구라도 자신을 이기면 100만 위안(1억8천만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대신 눈을 가리고 바둑을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엉뚱한 제안은 칭화대학 컴퓨터 공학과 출신의 아마추어 빠오윈(鮑云) 6단입니다. 대국자는 눈을 가리고 보조원이 옆에서 상대의 착점을 좌표를 기억했다가 자신의 착점을 좌표로 불러 착점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눈을 가리고 바둑을 두는 암흑바둑(맹기, 盲棋)의 세계 1인자로 알려졌는데, 과연 자신이 1인자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라고 했습니다.

그는 6살에 바둑을 배워 17세에 아마 6단이 되었습니다. 전국 아마추어 선수권에서 우승했으며, 2003년에는 만보배 단체전에서 우승한 베이징 팀의 일원으로 활약했습니다. 1995년에 우연히 한국 바둑 TV에서 목진석 9단이 눈을 가리고 121수 까지 둔 대국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그도 재미삼아서 친구와 처음으로 암흑대국을 해 보았는데 171수만에 승리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암흑바둑의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암흑바둑에 뛰어들었습니다. 2006년에는 두 명과 동시에 암흑바둑을 두는데 성공했으며, 빠오윈 6단이 모두 승리를 했습니다. 2012년 11월 빠오윈은 국제바둑문화절에 초대를 받아서 1대2의 암흑바둑을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빠오윈은 바둑판을 이미지화하는 영상기억법으로 5명과 다면기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암흑바둑은 당나라 현종 때 왕적신(王積薪)이라는 인물이 말로 바둑을 두는 고수를 만났다는 설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왕적신은 황제의 바둑 상대역을 맡은 기대소(棋待詔)라는 벼슬을 지냈으며, 바둑의 십계명이라고 하는 위기십결(圍棋十訣)을 만들었던 인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 현종이 안록산의 난을 피해 피난 중일 때 피난 행렬을 따르던 왕적신이 홀로 길을 잃고 깊은 산 속의 불빛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시어머니와 전란으로 남편을 잃은 며느리 단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끼니도 변변치 않은 집이라서 저녁도 못 먹고 기름을 아끼기 위해 불도 못켠 채 뒷방에 일찍 누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 벽 사이로 두 여인의 말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바둑을 두자는 이야기였습니다. 둘은 말로 바둑을 두기 시작했고, 100수가 지나자 무궁무진한 호각지세의 수읽기가 펼쳐져서 왕적신은 감탄을 하며 감상하고 있었는데 돌연 ‘아가, 네가 졌구나.’하자 ‘네. 어머님. 돌을 거두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안이 벙벙해진 그는 그들이 고수임을 알고 다음날 가르침을 구했으나 아니라며 부인했습니다. 이 후 난이 평정되고 환궁을 할 때 그 집을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바둑소년’이라는 만화영화에는 당대 중국과 일본의 최강자가 바둑판 없이 말로써 좌표를 주고받으며 바둑을 두는 장면이 나옵니다. 눈을 가리고 바둑 한 판을 두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둔 암흑바둑은 당시 강지성 5단, 최철한 4단이 둔 것입니다. 100수까지 눈을 감고 두었으며, 이미 놓인 자리에 다시 두게 되면 한 집을 공제하기로 했는데, 다시 두는 일은 없었습니다. 또한 금년(2013년) 초 바둑TV에서 설특집으로 김지석 8단과 강승민 2단이 유사한 방식으로 ‘신암흑대결’을 펼쳤습니다.

일본에서는 하네 나오키 9단의 부친인 하네 야스마사 9단이 시도했으며, 100수 정도에서 그쳤습니다. 최근 중국기원 원장을 지낸 천주더 9단과 뤄지엔원 7단이 맹기를 시도했는데 200여 수에 이르러서 중단되어 실패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 때 천주더 9단은 축을 만났을 때가 가장 어렵다고 했습니다.

장기와 체스는 모두 암흑대국이 있습니다. 장기계의 대사형이라고 불리는 류다화(柳大華)도 눈을 가리고 두는데 일가견이 있었으며, 1대 19로 둔 기록이 있습니다.

한국의 송중택 아마6단은 23세 때 녹내장으로 양안 시력을 모두 잃은 시각장애인입니다. 이 후 서울 한빛맹학교를 다니면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는 그가 30세였을 때 바둑판 줄이 돌출되어있고, 바둑돌을 바둑판에 끼울 수 있게 제작된 시각장애인용 바둑판을 선물했습니다. 매끈한 백돌과는 달리 흑돌에는 돌출된 부분이 있어서 촉감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대국 틈틈이 손으로 돌을 만져서 판세를 점검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력입니다. 그는 44세에 시각장애인에게 체계적인 이론을 가르치기 위해 명지대 바둑학과를 진학하여 졸업했습니다. 현재 아마 6단의 실력을 쌓았으며, 8년 연속 세계선수권을 제패했습니다. 빠오윈과 대국이 한 번 성사되면 좋겠습니다.

2012년 전국장애인체전의 전시 종목에 바둑이 포함되었습니다. 현재 50여명의 시각장애인이 바둑을 두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문제는 특수한 바둑판이 일제라서 구입과 보급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를 계기로 바둑이 장애인올림픽 종목이 되기를 바라며,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바둑의 매력에 빠져서 암흑바둑을 제패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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