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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72

관리자 | 기사입력 2013/05/09 [09:04]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72

관리자 | 입력 : 2013/05/09 [09:04]

망막의 별 Ryan 지다

3학년은 의대생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내과 과목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내과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신체의 질병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한 과목일 뿐인데, 내과시험이 끝나면 17과목 전체 시험의 반은 끝난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 병들은 해리슨(Harrison)이라는 내과 책(Harrison's 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 속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1991년 인턴 때 전공 선택과 상관없이 월급을 아껴서 12번째 판 새 책을 샀을 때 제 손 안에 모든 의학이 들어온 것 같아 감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닐 껍질을 풀고 새 책 냄새를 한참동안 맡았던 기억도 납니다.

편집장이었던 해리슨(Tinsley R Harrison, 1900-1978)은 알라바마의 작은 마을 출신입니다. 존스홉킨스(Johns Hopkins) 의대를 나와서 심장전문의가 된 후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임상과 연구를 담당했지만 결국 고향에 있는 알라바마 의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는데 헌신했습니다. 알라바마 의대는 그의 존재만으로도 지방의대에서 국제적인 의대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이 두꺼운 3권의 내과 책 속에는 세상의 모든 의학지식을 넣기라도 한 것처럼 작은 영어글씨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해리슨은 1950년부터 편찬되었으며, 해리슨 편집장이 5판까지 관여했으며, 2011년에 18번째 판이 나왔습니다. 세상의 모든 의학 책 중에 가장 권위가 있는 책으로 알려졌습니다. 안과 전공의가 되었던 다음 해에 깜짝 놀랐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망막 책이 해리슨처럼 두꺼운 3권짜리였기 때문입니다. 전신질환을 다루는 것도 아닌, 200μm 밖에 안 되는 눈 속 망막을 이야기하면서 무슨 할 말이 이렇게 많을까요? 저는 또 전공의 월급을 거의 다 털어서 두 번째 판 망막 책을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라이언(Ryan)이라고 불리는 이 망막 책은 1989년에 첫 판이 나왔고, 금년(2013)에 5판이 나왔습니다. 망막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가 입원하시면 이 책을 펴놓고 공부하던 생각이 납니다. 물론 전 세계의 유수한 망막교수들이 집필에 참여했으며, 국내에도 라이언의 제자였던 윤영희 교수님이 저자 중 한 명입니다.

제게 라이언은 망막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라이언에는 망막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있으니까요. 이렇게 편집장이었던 라이언(Stephen J Ryan, 1940-2013)은 전 세계 모든 안과의사에게 각인이 되었습니다. 작년 2012년에 미국안과학회는 그에게 월계관(the Laureate Recognition Award)을 씌워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라이언이 지난 주 월요일(2013년 4월 29일)에 암과 투병 중 7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라이언은 1940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났습니다. 존스홉킨스 의대에서 안과 전문의가 된 후 눈 외상과 망막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도헤니 눈연구소(Doheny Eye Institute)의 소장이 되었고,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Keck 의대 안과과장과 학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가 안과 분야에서 이룬 일들 중에 망막질환에 대한 동물 맥락막신생혈관 모델을 만든 것과 망막 책을 편집한 것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국내에도 2001년에 1,000 쪽 이상 되는 한글 망막교과서가 국내 망막전문의들의 참여로 처음 출간되었고, 이 후 2004년에 개정판이, 2012년에 1500쪽 이상 되는 3판 한글 망막교과서가 집필되었습니다. 한글 망막교과서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책이 있다면 바로 라이언일 것입니다.

저는 라이언도 해리슨처럼 오랫동안 안과분야에서 뿐 아니라 의학 전체 분야에서도 권위를 인정받는 책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한글 망막교과서도 국내의 망막질환에 대해 다른 나라와 차별되는 여러 가지 정확하면서도 가치가 있는 특별한 이야기들로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제2의 라이언이 한국에서 나올 날을 고대합니다.

저는 국내의 모든 안과 의사들과 함께 이번 주 멀리서나마 라이언을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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