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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63주년특집] 화해의 시대, 남북한 의료가 나아갈 길

후생신보 | 기사입력 2018/06/15 [09:37]

[창간63주년특집] 화해의 시대, 남북한 의료가 나아갈 길

후생신보 | 입력 : 2018/06/15 [09:37]

그동안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던 남북한 관계가 화해의 무드로 봄날을 맞고 있다.

남북한 관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북한 핵문제가 연이은 남북한 정상회담과 특히 오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크게 변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남북한 화해 무드에 보건의료계의 교류에도 큰 변화가 예상되는데 그동안 정치적인 관계에 따라 중단되었던 남북한 의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70년이 넘는 분단으로 민간의료 중심인 대한민국과 무상치료 중심의 공공의료체계인 북한 의료는 많은 차이가 있다. 북한의 의료시설은 노후화 되어 있고 장비의 현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4.27 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는 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에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남북한 보건의료 협력 측면에서는 반갑지만 않은 것이 사실이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교류 협력은 위험성이 크고 지난 10여년간 북한과의 교류가 끊겨 북한의 보건의료환경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도 중단된 상황에서 통일을 대비한 북한과의 보건교류 협력은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반도의 질병 안전을 위해서는 남북한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에 본지는 창간 63주년을 맞아 ‘화해의 시대, 남북한 의료가 나아갈 길’을 주제로 특집을 마련했다. 이번 특집에서는 이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초청해 남북한 의료발전의 역사와 북한 의료, 의학교육제도 의료산업을 살펴보고 보건의료산업과 협력 방안 등 미래에 다가올 남북한 통일에 대비해 의료계가 준비해야 할 사항에 대해 점검한다.

 

글싣는순서

1. 분단 이후 남북한 보건의료 발전 역사

황상익 명예교수(서울의대)

 

2. 북한의 의료실태

이혜원 과장(서울의료원)

 

3. 북한의 의학교육제도

서대헌 교수(서울의대 통일의학센터 부소장)

 

4. 북한의 보건의료산업과 협력방안 

김대중 위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

 

5. 통일대비 의료계 준비

신희영 교수(서울의대 통일의학센터 소장)

 

 

분단 이후 남북한 보건의료 발전 역사

 

▲ 황상익 명예교수(서울의대)     © 후생신보

“조선의 보건 수준은 일제 침략자들로부터 해방된 시점까지 매우 낮았다. 결핵, 결막염, 매독, 임질, 나병 등이 주민들 사이에 만연해 있었다. 그밖에 장티푸스, 적리, 두창, 콜레라 등과 같은 매우 위험한 전염병에 계속 시달리고 있었다.

의료기관들은 주로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의료활동을 벌였으며, 조선인 중에서는 특수 상류층과 부유층만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가난한 조선인들은 돈이 없어 의료봉사를 받지 못한 채 민간 의료인(주로 의생)이나 주술사에 의존했다.

일제시대의 병원들은 관영이든 민영이든 어떤 의료설비도 갖추지 않은 텅빈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병원은 오히려 전염병 확산의 근거지가 되었다.” <북조선 주재 소련민정청 사업 결산보고서>(1945년)

 

일제는 식민지통치를 통해 조선(한국)에 근대적 의료를 보급했다고 강변했지만, 사실은 위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듯이 일제강점기는 보건의료 면에서 발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정체의 시기였다.

 

남북 분단과 보건의료

 

70년이 넘는 분단은 남북한 양쪽의 의료체계와 주민들의 건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다. 남과 북은 단순히 두 개의 국가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극도의 군사적, 정치적 대립 상태에 놓여 있고 그 대가로 엄청난 ‘분단비용’을 치르고 있다. 일부 수구세력은 통일을 반대하는 논거로 막대한 통일비용을 들고 있지만 남과 북은 이미 통일비용을 훨씬 능가하는 분단비용을 치러 왔거니와, 앞으로 분단과 긴장이 지속되는 한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분단구조를 지속하기 위한 분단비용 지출의 대가로 남과 북은 그만큼의 희생을 치러왔으며, 그것은 보건의료 등 복지부문의 축소로 귀결되었다. 분단의 해소와 통일, 또는 그에 앞서는 남북 긴장관계의 완화가 주민들의 건강 수준을 한층 높일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해방 이후 북한 보건의료 발전과정

 

(1) 해방부터 한국전쟁까지(1945-1950년)

해방 당시 북한에는 병원이 42개소에 1,135병상이 있었으며 의사는 한지의사를 포함해 인구 만명마다 1명 안팎이었고 65%가 무의면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1946년 3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국가병원의 수를 확대하는 동시에 전염병을 근절하고 인민들을 무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보건분야의 당면과업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1946년에는 국가예산의 6.2%를 보건부문에 지출하여 각 군에 1개소 이상의 국영병원을 설치했고, 1950년 상반기에는 무의면을 완전히 해소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1947년부터 <사회보험법>에 의거하여 노동자, 사무원 및 그 부양가족에 대한 무상치료를 실시했으며 1948년부터는 병원 분만과 3세 미만의 어린이, 지정전염병 환자, 양로원 수용자, 극빈자 등에 대해서도 무상치료원칙을 적용했다.

 

이 기간 동안 의료기관을 사회화(공유화)하는 정책이 다음과 같이 집행되었다. 즉 국가병원을 확대하고 개인의료기관에 대한 국가보건기관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하는 한편 개업의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벌였다. 그리고 의료수가를 국가가 장악하고 누진적인 세금제도를 씀으로써 사적 의료부문을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그러한 시책에 반대하는 의료인들이 이 시기 동안 대거 월남함으로써 사회화정책은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북한 보건의료제도의 기본토대가 마련되었다.

 

(2) 한국전쟁 시기(1950-1953년)

전쟁을 치르면서 보건의료체계도 자연히 군대 의료시설 중심의 편제를 가지게 되었으며 개전 초기인 1950년 7월부터 이재민에 대한 무상치료를 실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선이 고착되어 있던 1952년 11월 ‘무상치료를 실시할 데 대한 내각 결정’을 내리고 이에 따라 1953년 1월부터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실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3) 3개년계획 시기(1953-1956년)

휴전 직후인 이 시기에는 보건의료의 과제를 “복구건설의 힘겨운 전투를 맡아 하게 될 인민들의 건강을 보호 증진시키는 인민보건사업을 강화”하는 데에 두고 노동력 수급을 위한 인구증가 정책, 전쟁고아 등 아동들에 대한 보육시설 확장, 각급 의료기관의 복구와 확장, 의료요원의 자질 향상 및 인적자원 증대, 의학교육과 연구 사업에서의 주체 강조, 의료기구 및 제약 공업의 성장, 민간요법 및 한의술의 발굴 등 당면 과업을 수행했다. 여기에는 북한 사람들의 자주적 노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사회주의 우방의 지원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4) 5개년계획 시기(1957-1961년)

이 동안은 보건사업의 기본방향을 모든 질병의 철저한 예방, 농촌 리 단위까지 진료소 설치, 의료시설과 의약품 생산 확대, 주요한 보건의료 연구·교육기관의 설립, 민간요법 및 한의술의 확충 등에 두었다. 그리고 북한 당국은 1958년에 비사회주의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하여 사회주의적 보건의료제도가 확립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또한 1960년에는 모든 리에 진료소를 설치함으로써 완전하고 전반적인 무상치료제가 실시되었다고 선포했다. 

이와 같이 이 시기에 북한 보건의료제도와 자원의 기본틀이 완전하게 갖추어졌다. 전쟁 중의 파괴로 인해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가로막는 인적·물적 요소가 대부분 제거된 것도 체제의 확립에 도움이 되었다.

 

(5) 7개년계획 시기(1961-1970년)

북한 당국은 이 기간 동안에 완전하고 전반적인 무상치료제와 의사담당구역제 등을 실시할 수 있는 제도적 체계를 확립하고 그 내용을 채움으로써 이전 시기에 수립된 사회주의 보건제도를 공고 심화시켰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1961년 100% 해산방조 실시, 1964년 의사담당구역제 실시, 1968년 간염연구소 및 모든 군구역에 간염 격리병동 설립 등의 성과를 올렸다고 한다.

 

(6) 6개년계획 시기(1971-1977년)

이 동안의 성과로 내세우는 것은 위생방역사업의 강화, 의사담당구역제의 전면적 실시와 의학 및 간호교육 체계의 확립, 제약공업과 의료기기 생산의 확대가 있다. 그리고 의료기관을 확장하고 현대화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아동병원과 산원시설을 강화하고 리 진료소에 전문과와 입원실을 두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또한 의료인과 학생을 외국에 대거 유학시켜 새로운 보건의료 지식과 기술을 흡수하는 데 노력을 하면서 그 동안 쌓아왔던 동의학(한의학) 지식과 기술도 함께 수록한 『림상의전』을 간행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그리고 대중사업으로는 약제채취의 전 군중적 운동화를 주요한 성취로 꼽고 있다.

 

(7) 2차 7개년계획 시기(1978-1986년)

이 기간에는 이전 시기 사업을 더욱 확대강화하고 심화시켰다고 하며 그 동안의 성취와 북한 보건의료사업의 지향을 총정리하여 1980년에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인민보건법>을 제정했다.

 

(8) 그 이후인 3차 7개년계획 시기(1987-1996년)

1997년부터 지금까지는 보건의료체계상의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북한의 경제난으로 보건의료 물자의 공급과 보건의료인력의 재생산에도 차질이 생겨 매우 큰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무상치료제의 원칙은 유지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이전에 비해 크게 축소된 것으로 여겨진다.

 

대체로 위와 같은 발전과정을 겪어온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원칙과 특징은 ①무상치료제, ②예방의학 중시, ③의사담당구역제, ④고려의학(전통의학)과 신의학(현대의학)의 병행, ⑤대중의 보건사업 참여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남한 보건의료 발전과정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래 남한의 의학과 보건의료 분야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한 발전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바, 네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한다.

 

(1) 경제성장과 보건의료비 지출의 증가

남한의 의학과 보건의료가 짧은 기간 동안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도 국민경제의 신속한 성장이 가장 든든한 밑받침이 되었다. 

경제성장으로 국민생활이 윤택해짐으로써 보건의료 분야의 수요가 커졌으며, 또 그만큼 의학과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지출과 투자능력도 증대한 것이다. 화폐가치 변동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1인당 국민소득(GDP)이 1950년대초의 67달러에서 2017년의 29,745달러로 400배 이상 증가한 것이 보건의료 발전의 기본적인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국민의료비 총액은 1975년의 2,980억원에서 1997년 25.8조원, 2016년 125.2조원으로 늘어났으며, 국민소득 대비 의료비지출 비율은 1975년의 2.8%에서 1997년 6.7%, 2016년 7.7%로 팽창하였다.

 

(2) 보건의료제도의 확립

남한의 보건의료 제도가 아직까지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정부 수립 이후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제도 정비가 이루어진 것이 의학 및 보건의료 분야의 발전과 남한 국민의 신속한 건강 증진을 가져 온 중요한 요인으로 평가된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국민의료법 제정(1951년; 1962년에 의료법으로 전면 개정), 의사·치과의사·한의사 국가시험령 제정(1952년), 약사법 제정(1953년), 전염병예방령 및 검역법 제정(1954년), 보건소법 제정(1956년), 학교보건법 제정(1967년), 모자보건법 제정(1973년)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의료보험법의 제정과 실시는 보건의료 분야 수요의 확대를 통해 의학과 보건의료 분야의 발전과 성장을 추동한 중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는바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즉 의료보험법 제정(1963년), 500인 이상의 대규모 사업장 대상으로 의료보험 실시(1977년), 모든 공무원과 교원에게 의료보험 실시(1979년), 전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 실시(1989년) 등이다.

의료보험(국민건강보험)의 도입과 급속한 확대는 일차적으로 남한사회의 산업화 및 의료화 과정에 따르는 현상이지만, 북한과의 체제경쟁이라는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1960년대 이래 본격적인 산업화를 추구한 남한사회는 건강한 노동력의 확대재생산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의료보험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방안이었다. 

 

그리고 그 중요성에 비해 충분히 지적되고 있지 않지만, 의료보험은 의료시장의 확대(사회의 의료화)라는 의료계와 제약산업의 요구를 수용하는 통로의 구실을 해 왔다. 의료보험의 도입과 확대가 없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거대한 의료시장의 형성과 의료인의 사회적 파워, 그리고 의료 이용의 보편화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의료보험은 ‘무상치료제’를 근간으로 하는 북한 의료체계에 대한 남한사회의 전략적 대응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한편 의료보험의 도입과 더불어 확장되었어야 할 공공의료기관은 오히려 날로 축소되었으며, 국가의 질병 예방 기능도 상대적으로 소홀해짐으로써 의료와 국민보건은 시장에 맡겨졌으며, 국가는 대체로 의료수가 조정(억제)이라는 안이한 방법으로 의료에 개입할 따름이었다.

 

(3) 평균수명의 증가와 질병발생 양상의 변화

국민의 건강상태와 질병 양상은 의학과 보건의료 분야의 발전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국민의 평균수명(출생시 기대여명)은 경제성장만큼이나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즉 1945년의 40~45세에서 1975년 67세, 1996년 74세, 2016년 82세로 증가하여 이제는 선진국에서도 상위권이다. 

 

영아사망률은 1955년의 134(출생 천명당)에서 1975년의 41, 2016년의 3으로 불과 두 세대 남짓만에 1/45로 떨어진 것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이며 남한 사회의 발전을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보건지표이자 사회지표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평균수명과 영아사망률의 개선과 더불어 질병발생 양상도 선진국형으로 바뀜으로써 보건의료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고 이로써 보건의료 분야의 발전이 가속화되었다고 평가된다. 

이같은 평균수명의 증가와 질병발생 양상의 변화는 보건의료 분야의 발전을 가속화시킨 원동력이면서 동시에 그 발전의 결과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4) 보건의료인력과 의료기관의 발전

경제성장, 의료제도의 확립, 평균수명의 증가와 질병발생 양상의 변화 등 객관적인 조건 속에서 주체적으로 국민건강을 담보하고 의학과 보건의료 분야의 발전을 이끈 것은 의료인력과 의료기관들이다. 지난 70여년 동안 의료인력과 의료기관이 급성장함으로써 보건의료 분야의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의료법에서는 약사를 의료인에서 제외하고 있지만, 실제로 국민건강 증진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으므로 여기에서는 약사를 포함해 검토하기로 한다. 

 

의료인 총수는 통계자료가 남아 있는 1949년의 만명 남짓에서 2016년의 115만여명(의사 118,093명, 치과의사 29,503명, 한의사 23,460명, 약사 66,992명 등)으로 100배 이상 증가를 보였으며, 인구당 의료인력도 약 40배 증가했다. 

의료인력의 구성은, 초기에는 의사가 가장 많았던 반면 오늘날에는 간호사와 의료기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의료 공급의 중심이 의원에서 대규모 병원으로 바뀌고 있는 사정을 반영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 기간 동안 전체 의료기관 수는 1953년의 4,792개에서 2016년의 64,993개로 13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종합병원은 42배(1970년 대비), 병원은 15배, 의원급은 12배로 늘어났다. 1960년대까지 의원급의 병상 수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총 병상 수의 정확한 변화 추이는 알 수 없지만,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병상 수는 1955년의 7,975개에서 2016년의 585,516개로 73배 남짓 증가했다. 

2016년 현재 총 병상 수는 692,345개이고 이 가운데 병원급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85%이며 앞으로 그 비율은 더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60여년 동안 의료기관이 급격히 팽창했으며 점점 대규모 병원이 중심이 되어 온 경향을 볼 수 있다.

 

남북한 보건의료 특성과 차이점

▲ 표 1     © 후생신보


남한이 국민건강보험을 근간으로 하는 민간의료 중심인 데 반하여, 북한은 무상치료제 원칙 하의 공공의료체계이며, 남한이 ‘양한방 2원화’로 요약되듯이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이 별도로 존재하는 데 대하여, 북한은 고려의사(한의사)가 별도로 존재함에도 의사가 고려의술(한의술)을 시술하는 것이 허용되는 정도를 넘어 의무화되어 있는 등 남북한 의료체계의 차이점은 <표 1>과 같이 여러 측면에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 

 

 

북한의 의료실태

 

▲ 이혜원 과장(서울의료원)     © 후생신보

북한의 현재 의료수준과 현황을 예측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각도에서 북한의 상황을 살펴봐야한다. 가장 먼저 보건지표들을 살펴볼 수 있다. 

아래의 그래프는 남과 북의 기대수명의 변화를 1960년부터 2014년까지 보여주는 그래프이다. <표 1>

 

1960년 남북 기대수명의 차이는 2세로 보고된다. 북한이 남한을 점차 따라오면서 1980년대 들어서면서 기대수명의 차이가 없어지는 시기에 도달한다. 그러나 1990년부터 다시 격차가 형성되다가 북한의 경제적, 환경적 타격이 심했던 1990년 중반부터 지표는 급속히 감소하게 된다. 기대수명 지표가 회복되는 시기는 2000년대이며, 서서히 회복된 지표는 1990년 초반의 수준까지 도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남북 기대수명의 차이는 11.7세이다. 

 

기대수명 외 모자보건 관련 다양한 지표들(모성사망비, 신생아 사망률, 5세 미만 아동 사망률 등)의 연도별 변화를 보면 유사한 패턴을 관찰할 수 있다. 보건지표들의 변화흐름을 살펴보면서 북한 의료수준과 실태의 변화흐름을 예측해 볼 수 있다. 1980년대 말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북한으로 공급되었던 많은 의료물품들이 감소되거나 중단되기 시작하였고, 1990년 중반 북한의 경제적 위기, 김일성의 사망 그리고 반복된 자연재해로 인해 자체적으로 보급되던 자원들의 생산력과 공급력이 떨어지면서 중앙집권적인 북한의 보건의료체제는 점차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 표 1     © 후생신보

 

보건의료 인력의 급여가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고, 의료기관에 의료물품이 부족하다보니, 의료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업을 만들고, 비공식적인 진찰료를 받게 되며, 장마당과 같은 시장을 통해 의료물품이 공급되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이러한 변화들이 생겼고, 외부적으로는 국제기구 및 민간단체로부터 지원을 받기 시작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러한 변화들이 형성되고 조금씩 변형되면서 자리를 잡았으며, 이는 보건의료 영역에 국한된 변화가 아닌 북한사회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 변화였다. 경제적 측면에서 시장경제를 조금씩 도입하게 되는 경제적 체제전환의 특징들이 형성되었으며, 시작은 달랐으나 러시아, 동유럽의 체제전환국들이 경험한 변화들을 보건의료 영역에서 북한도 겪게 된다.

 

1990년대부터 북한의 보건의료지표들이 흔들렸던 시기, 북한 곳곳에서 감염성질환의 유행이 산발적으로 발생하면서 보건의료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산모와 아동들의 사망률이 늘고, 물품공급이 취약한 양강도나 자강도와 같은 지역은 상당히 높은 비율의 사망률 및 영양장애 결과수치를 보였다. 북한도 이 시기부터 지역간, 계층간 의료서비스 접근성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전인민 대상의 무상의료’ 보건의료체계는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북한에서 유행했던 감염성질환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알기 어렵다.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통계수치들은 매우 제한적으로 수집된 데이터들이다. 북한에서 지역별로 유행했던 감염성질환의 현황은 언론매체를 통해 확인하는 경우가 많고 북한이 대외적으로 지원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대략적인 규모를 가늠하게 된다. 1990년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 북한 감염성질환의 발생 및 유행들을 살펴보면, 콜레라, 장티푸스 등 수인성질환이 지역별로 반복적으로 유행한다. 

 

ㆍ1994년 함흥, 신포, 동해안을 중심으로 콜레라 발생이 시작되어 평양을 포함한 서해안으로 확산. 

ㆍ1995년 대홍수 이후 황해남도 해주, 청단 그리고 황해북도 사리원에서 시작된 콜레라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UN에 콜레라 백신 1만개 요청. 

ㆍ1996년 서해도 및 양강도 일대에 콜레라 환자 7만명까지 보고

 

예방의학을 중시하는 북한은 예방접종체계가 갖춰져 있어서 90년대 이전까지 높은 접종률을 보였으나, 이 수치 또한 90년 중반부터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WHO, UNICEF는 1997년부터 대북백신지원을 시작하고, 한국정부도 이에 동참한다. 

 

2002년부터 GAVI가 북한 백신공급 공여기관으로 지원을 시작하면서 북한의 예방접종률은 95%이상까지 빠른 속도 회복된다. 그러나 접종률이 높다고 면역항체 형성률이 모두 높은 것은 아니며, 홍역 1차 접종만 시행하던 북한은 2000년 중반이후에도 몇 차례의 홍역 유행을 보고하였다. 

 

<표 2>는 WHO에서 발표하는 예방접종대상 질환의 보고건수를 정리한 자료이다. 위의 자료가 북한의 관련 질환 발생현황을 모두 보고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두드러지게 높은 보고건수를 보인 2007의 홍역 발생 현황이나 일본뇌염의 발생 현황은 이후 홍역 2차 접종의 도입이나 캠페인 형식의 일본뇌염 예방접종 지원을 시작하는 근거자료 중 하나로 사용이 되었다. 

▲ 표 2     © 후생신보

 

이러한 질병에 대한 실태조사 자료는 국가적 질병관리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기초자료이며, 북한의 관련자료 부재는 국제적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북한의 보건의료 실태 파악을 위한 기초자료로 주요 질병별 실태조사는 대북제재가 해제되고 교류가 시작된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사업 중 하나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북한의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북한이 겪은 변화와 보건의료적 영역에서 받은 영향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체제전환국들이 경험했던 보건의료적 문제들을 살펴보려한다. 

 

1980년대 말 구소련의 붕괴 이후, 구소련 체제전환 국가들의 사회·경제적 변화 및 정치적 변화는 보건의료 영역의 재정 축소, 지방분권화(Decentralization) 그리고 의료기관들의 민영화(Privatization) 정책으로 인해 중앙정부의 권한 감소와 역량 부족한 지방정부의 부실한 평가·관리로 이어진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모두 질병감시에 대한 역량과 권한이 부족한 상황에서 감염성질환의 관리체계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반복적인 질병의 유행 뿐 아니라 항생제의 오남용으로 인한 높은 항생제 내성률을 보이게 된다. 

특히 치료기간이 긴 결핵의 경우, 이러한 환경에서 내성결핵이 발생할 위험성이 높아지게 된다. 다제내성결핵 및 슈퍼내성결핵의 유병률이 구소련 체제전환 국가들에서 지속적으로 높게 보고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한도 지속적으로 높은 결핵 발생률을 보이면서 내성결핵 환자의 발생이 증가하는 원인이 체제전환국들이 경험한 다제내성균 결핵환자 발생 원인과 유사할 것으로 판단된다.

많은 구소련 체제전환국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보건의료가 국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체계적인 보건의료체계의 재구축이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현재까지도 높은 국제기구 원조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1) 북한도 이와 유사하다. 

 

1990년 중반이후 북한이 긴급구호를 요청하면서 시작된 국제원조는 식량과 보건의료 분야에 큰 비중을 가지고 지속되었고, 여전히 예방접종, 결핵, 말라리아, 영유아 대상 영양 지원 영역에서 북한은 높은 비율로 외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해당 영역에서 북한이 자체적 생산력을 구축하거나 현재 지원되는 규모만큼의 보건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지금의 국제원조에 의존하는 구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원조 의존도가 높을수록 원조 분절화로 인해 중앙정부의 통제 및 관리 재량이 축소될 수뿐이 없으며, 이는 질환 관리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국제원조가 유지되는 과정에서도 북한의 중앙 통제권 및 관리 권한이 축소되거나 흔들지 않을 수 있는 보호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북한의 의료실태는 한국의 1980년도 수준과 일정부분 유사할 것으로 추측한다. 질병의 분포양상, 보건의료적 인프라와 보건재정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그렇게 추측해 본다. 체제와 문화가 다르기에 남북한이 다양한 다른 특징도 분명 존재할 것이나, 북한이 겪어온 보건의료적 흐름을 살펴봤을 때 과거 한국이 경험했던 과정을 북한도 경험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한국은 국제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국제원조 공여국으로 발전한 유일한 국가로 국제사회에 성공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한 성공사례로 소개된다. 그 성공 전략은 여전히 국제적 관심 사례로 주목을 받는다. 

 

북한도 우리와 같은 민족으로서 한국이 가졌던 저력을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유사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앞서 극복해 본 한국이 그러한 북한의 저력을 발화시키는 과정에서 힘이 되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

 

 

북한의 의학교육제도

 

▲ 서대헌 교수(서울의대)     © 후생신보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외교적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경색되어 있던 남북관계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훈풍이 불어 남북 정상회담이 두 차례나 연이어 개최되는 등 남북 간의 소통이 급진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남북관계의 악화로 중단되었던 남북 사회경제협력 분야도 다시 새로운 가능성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남북 사회경제협력 분야는 최근 이슈되고 있는 경제공업지구, 산림, 천연자원 등의 분야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가 바로 보건의료협력 분야일 것이다. 

 

남북 화해와 통합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 통일 시대를 맞이하는 주체는 남북의 주민들이고 그러한 사람들의 소통과 교류, 통합에서 상호간의 건강과 삶의 질 문제는 중요한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곧 펼쳐질 남북 화해, 협력의 시대에서 본격화될 보건의료분야 협력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 간 보건의료 협력을 준비하는 데 있어 시급히 필요한 중요한 과제는 어떤 점일까. 남북 간 서로 막혀있었던 오래된 역사로 인해 협력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지만, 무엇보다도 기본적으로 북한의 의료인 양성 교육제도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협력을 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과 사람이고,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남북의 의료인이 바로 협력의 주체이며 상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 간의 관계가 통합을 통해 남북 통일의 길로 나아간다면, 보건의료 분야의 과제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이 남북 의료인의 부문별 통합과 북한지역 의료인의 재교육, 자격면허 부여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북한의 의료인 양성 교육제도와 의료인 교육기관, 교육과정 등의 의학교육 현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최근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분석하여 준비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의사를 포함해 다양한 종류의 의료인이 존재하고 있다. 

독특하게도 북한의 의료인은 상등보건일군과 중등보건일군, 보조의료일군이라는 세부류로 나뉘어서 양성되고 의료현장에서 활동한다. 

상등보건일군에는 의사와 고려의사, 치과의사, 약제사 등이 있고 중등보건일군은 준의와 보철사, 조산원 등이 있으며 보조의료일군으로는 간호원이 있다<표 1>.

▲ 표 1     © 후생신보

 

북한의 의사는 상등보건일군으로서 의학대학 임상의학부에서 양성되고 있다. 북한의 의학대학은 의사인력 뿐만 아니라, 각각 남한의 한의사, 치과의사, 치과의사, 약사에 해당하는 고려의사, 치과의사, 약제사를 함께 양성하는 핵심적인 의료인 양성기관이다. 

현재 북한의 의학대학은 평양과 각 도에 12개교가 존재하고 있는데, 최근 북한은 고등교육체계의 개편이 진행되고 있어 부문별·지역별로 종합대학을 신설되고 지역의 단과대학들이 편입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의학대학들이 각 지역의 종합대학 소속의 의학대학으로 개편되는 등 최근 김정은 시대 북한에서는 의료인 양성체계가 변화하고 있다<표 2>.

▲ 표 2     © 후생신보

 

종종 우리는 북한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주민의 성분과 토대가 작용하고 부모의 능력과 자금력 등이 영향을 끼친다고 알고 있지만, 2000년대 들어 북한에도 의료인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의학대학에 입학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의학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입학시험을 치러야 하고 의학대학 입학경쟁률은 현재 약 3:1 정도로 치열한 입시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의학대학 입학 시에는 고급중학교 성적표와 대학진학시험점수 및 추천서 제출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심사가 진행되고 별도의 의학대학 입학시험을 치른다. 

의학대학 입학시험과목은 사회, 국어, 외국어, 과학, 역사, 정치, 수학 등의 7과목 필기시험과 체력시험 4종목, 면접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 의학대학의 교육과정은 남한 의과대학의 교육과정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북한의 의학대학 임상의학부의 교육과정은 크게 기초학과목, 기초의학과목, 임상의학과목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1학년때에는 수학, 영어 등의 대학 기초학과목을 학습하고 2학년때 병리학, 조직학 등 의학교육을 위한 기초의학과목을 학습한다. 그리고 3학년때부터는 본격적인 임상의학과목을 학습하는데, 5학년을 마치고 나머지 6개월 동안 임상 실습 수업을 진행한다<표 3>.

▲ 표 3     © 후생신보

 

또한 북한의 의학교육제도에서는 남한의 인턴, 레지던트 과정과 같은 수련의 과정이 없고 졸업 후 바로 각종 병원의 전문과에 배치되어 경력을 시작하는데, 2013년도부터는 의학대학 임상의학부 외에 7년제의 전문반을 따로 신설하였다는 정보가 있다. 

의학대학 전문반에서는 임상의학부 5년 6개월 과정 이후 1년 6개월 동안 전문의 전공과목인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안과, 이비인후과 등을 전공하는 과정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남북 간의 의학교육과정에서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 우선, 북한의 의학교육과정에서는 남한에는 없는 정치사상 학과목이 존재하고 의학실습 여건이 열악하다. 

북한의 체제 특성상 정치사상 학과목은 여느 교육기관에서도 모두 의무적으로 학습하기 때문에 의학교육기관에서도 학과목이 개설되어 있다. 

 

북한의 의학대학에 개설된 정치사상 관련 학과목은 김일성-김정일주의학, 주체정치경제학,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동지 혁명력사, 김정숙동지혁명력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혁명력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로작,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혁명력사 등으로 다양하게 개설되어 있다. 이 같은 정치사상 학과목은 사실, 의료인력 양성과는 상관없는 학과목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학업부담을 가중시켜 의학교육에 집중해야 할 교과과정에서 학습의 집중도를 분산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의학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의학실습 교육의 여건과 관련해서도, 북한의 의학대학 임상의학부 교육과정은 2학년부터 5학년의 기간 중 3년가량을 의학이론에 해당하는 교육을 수강하고 6개월 기간 동안 실습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의학실습 교육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며 여기에 더해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보건의료체계 및 의약품 물품공급체계 등이 상당부분 와해되었고 이로 인해 의료인 양성을 담당하는 의학교육기관의 교육체계, 교육인프라 등도 상당부분 영향을 받으면서 의학대학 학생들의 실습 여건과 부속교육병원인 도병원의 실습 환경이 열악한 상황이다.

 

특히 남북 간 의학교육제도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는 제도로 의사 자격 면허 취득 제도를 들 수 있다. 

남한의 의과대학에서는 졸업과 동시에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시행하는 의사 국가시험을 통해 면허를 취득하지만, 북한의 의사인력은 의학대학 졸업시험만으로 의사 자격을 받고 있는데, 졸업시험은 관행적으로 시험참가자들을 전원 합격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표 4>.

▲ 표 4     © 후생신보

 

끝으로 덧붙이면, 북한에는 남한에는 없는 독특한 의료인이 존재한다. 바로 준의라는 의료인인데, 이는 남한의 의사는 아니고 그렇다고 간호사와도 차이가 있다. 북한의 준의는 의학전문학교라는 3년제 전문학교에서 양성된다. 

 

의학전문학교는 준의를 포함해 보철사와 조산원, 조제사 등의 중등보건일군이 양성되고 있다. 

의학전문학교는 북한의 각 도에 1개교씩이 설치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의학전문학교의 상세한 교육과정과 현황은 아직 파악이 잘 되지 않고 있다. 

북한에서 발행되는 문헌에서도 의학전문학교에 대한 내용은 매우 드물며 그 현황이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준의는 주로 리·동진료소 등의 1차의료기관에 배치받아 호담당의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2차, 3차의료기관에서 근무할 때는 주로 간호원의 직능을 담당하고 있다.

준의와 관련하여 북한 의학교육제도에서 더욱 독특한 점은 준의와 간호원이 의학대학의 통신학부에 편입하여 3~4년간 1년에 상반기와 하반기 2회 교육을 마치고 의학대학을 졸업하면 의사가 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런데 이렇게 북한의 준의와 간호원이 현업으로 의료기관에 근무하면서 의학대학 통신학부를 이수하고 졸업시험을 통과하여 의사가 되는 북한의 독특한 의료인 상승 제도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의 특성 상 의사인력의 적정한 의료인 소양 및 수준 문제와 함께 추후 남북통합의 과정에서 남북 의료인력 통합이라는 과제를 앞두고 상당히 큰 과제를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다. ▣

 

 

북한의 보건의료산업과 협력방안 

 

▲ 김대중 위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     © 후생신보

북한의 보건의료체계와 특징

 

북한의 보건의료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보건의료기본법에 해당하는 인민 보건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1980년 4월 3일 채택된 인민보건법은 보건의료서비스가 어떤 원칙하에 제공되고 있는지 보건행정의 기본 이념은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다. 본 고에서는 북한의 보건의료산업의 현황을 살펴보기 이전에 인민보건법에서 드러난 보건의료체계의 특징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북한의 보건의료체계에서 내세우고 있는 첫 번째 원칙은 무상치료제이다. 북한의 인민보건법은 총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제2장을 무상치료제와 관련한 규정으로 채우고 있다. 구체적으로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비롯한 모든 공민(국민)은 무상으로 치료받을 권리를 가지고, 외래치료환자를 포함하여 의료기관에서 환자에게 주는 약은 모두 무료이며, 진단, 실험검사, 치료, 수술, 왕진, 입원, 식사 등 환자치료를 위한 모든 봉사가 무료이다. 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의 요양의료서비스, 요양을 위한 왕복여비, 해산, 건강진단, 건강상담, 예방접종 등 예방의료 봉사도 무료이다.

 

북한의 의료시스템의 두 번째 중요한 원칙은 예방의학에 의한 건강보호이다. 인민보건법 제3조에서는 “사회주의 의학에서 기본은 예방이다. 국가는 인민보건사업에서 사회주의의학의 원리를 구현한 예방 의학제도를 공고히 발전시킨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민보건법 제3장은 예방의학적 방법에 의한 건강보호를 위한 국가의 공해방지 의무 및 전염병예방, 공공단체의 위생관리 의무 및 산업성 질병 방지, 위생규범 등의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측면에서 예방중심의 의료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국가가 의사들이 일정한 주민구역을 담당하고, 맡은 구역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돌보는 의사담당구역제이다. 의사담당구역제는 1961년부터 도입되었으며, 북한의 의료전달체계에서 기초가 되는 일차의료를 담당하고 있다. 의사담당구역제는 거주지 단위로 하는 거주주민 담당제와 기업소 등을 중심으로 하는 직장담당제로 이원화 되어 있다.

 

북한의 보건의료체계의 세 번째 원칙은 고려의학 등 주체적인 과학기술 발전과 고려약의 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인민보건법 제16조에서 “국가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치료방법인 고려치료방법을 발전시키며 고려의료망을 늘리고 의료기관들에서 현대의학적 진단에 기초한 고려치료방법을 널리 받아들이도록 한다.” 고 되어 있으며 구체적으로 고려의학과 민간요법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고려약 생산기지를 보호하고, 그 보호와 채취를 계획 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거의 모든 시·군의 인민병원에 고려의학과가 설치되어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북한의 보건의료산업 현황

 

북한의 의료전달체계는 1차 진료기관으로 리단위의 리·동 진료소 또는 리인민병원이, 2차 진료기관은 시·군의 구역 인민병원, 3차 의료기관은 도·직할시의 시·도 중앙병원과 특수병원이 진료를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4차 진료기관은 주로 평양의과대학이나 적십자병원 등 평양에 소재해 있는 특수병원으로 고위관료 및 당 간부를 위한 병원 또는 특정질환 전문병원 등이 해당한다. 행정구역별로 보건기관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도(직할시)에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이 각 1개씩, 시·군 구역 지역에 인민병원 1~2개, 리·동 구역에 리 인민병원과 진료소 1개, 작은 리, 동을 합쳐서 종합진료소 1개씩을 설치하고 있다. WHO의 2009년 자료에 의하면 1차 의료기관인 종합진료소/진료소 6,263개, 리 인민병원 974개, 2차 진료기관인 시·군 인민병원은 601개, 3차/4차 병원은 133개로 보고하고 있다. 

 

북한의 의료인력은 OECD/WHO(2012)에 의하면 인구 천명당 3.3명, 간호사수는 4.1명 수준으로 우리나라보다 의사수(인구 천명당 2.0명)는 많고, 간호사수 (인구천명당 4.7명)는 우리나라보다 적다. 북한에서는 의사면허증 제도가 없고 의학대학을 졸업하면 의사로서의 자격을 얻게 된다. 보건의료인력을 양성하는 의학대학은 군의대학을 포함하여 총 12개 대학이 있고, 여기에서 의사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의학전문학교가 있어 준의사를 양성하거나 의학대학의 야간교육, 통신교육을 통해 부족한 의료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 시기이후 북한의 보건의료 시스템은 무상치료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1990년 초반의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1990년대 중반의 자연재해에 따른 열악한 경제상황으로 국가에서 적절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의료 자원 특히 의료시설과 의약품, 의료기기 등 보건의료제품의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탈북의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병원내에서 의약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개인이 의약품을 장마당에서 구입해서 복용하고 있어 무상치료는 일부 계층에 국한된 것으로 전락했다. 장마당에서 구입한 의약품의 품질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질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손쉽게 구한 의약품의 오용과 남용이 심각한 상황일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일반인은 장마당에서 의약품을 구입한 후에 진료소나 병원에서 구입한 의약품을 복용하기도 하지만, 의사들은 사실상 시장화 되어 있는 의료서비스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매상으로부터 직접 약을 구입하여 환자에게 돈을 받고 약을 판매하거나 방과 후 개인 진료소를 운영하여 선물 등 물질적 보상을 받고 진료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보건의료의 시장화에도 불구하여 여전히 의약품은 부족한 실정이다. 북한내 의약품 생산공장이 순천제약공장(평남 순천), 평양제약공장(평양), 평스합영공장(평양) 함흥제약공장(함흥), 나남제약공장(청진) 등 10여개의 중앙제약공장이 있으나 3~4종의 항생제와 설파제 등 20여종의 합성의약품을 생산하고 있을 정도이고, 전기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의약품 원료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생산 수준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부족한 의약품을 보충하기 위하여 약초재배와 채취를 장려하고, 진료소나 병원에서도 이들 약초를 이용한 한방 약재들을 많이 처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감기환자에게는 아스피린 대신에 삼황산을 처방하거나, 소화불량이 있는 경우 황경피를 처방하여 다스린다. 

 

보건의료산업분야 협력방안

 

2015년 WHO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 남성의 기대수명은 67.0세, 여성의 경우 74.0세로 우리나라의 남성 기대수명 80세, 여성 기대수명 86세와는 각각 13년, 12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00년대 중반이후에는 1990년대 초반수준으로 기대수명이 회복되었으나 이후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1). 2008년 당시 북한의 모성사망비는 인구 10만명당 77.2명, 유아사망율은 1,000명당 19.3명으로 우리나라의 그것보다 약 5배가량 높았고, 2016년 북한이 결핵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578명으로 우리나라 보다 3배 이상 높았다. 

 

북한 주민의 보건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저하된 상황에서 우리나라와 보건산업분야에서의 협력 분야는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공공차원에서의 무상지원 등 인도적 지원 이외에 민간 차원에서의 다양한 협력모델이 가능할 것이다. 

 

북한 지역 병원은 시설이 노후화 되어 있고, 의료장비의 현대화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의료기관이 정부 보조금 지원이나 자체 재원으로 CT 촬영기, MRI, 초음파 진단장비 등을 투자하고, 일정기간 병원을 운영한 후 운영기간이 종료되면 이를 이전하는 BOT(Build-Operate-Transfer)방식 또는 민간사업자가 병원을 현대화한 후 이를 임대하는 BTL(Build-Transfer-Lease)방식 등이 가능할 것이다. 국영의료체계인 점을 고려하면 자금을 회수하는 방법이 관건이겠으나, ODA 재원 등을 활용하여 투자가 가능할 것이다. 

 

상기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북한 주민의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향상시키기 위해 의약품 판매의 통제 및 생산을 포함한 전반적인 관리가 필요한 실정이다. 품질이 확보된(GMP) 의약품이 안전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정책 마련이 필요하겠으나, 의약품 생산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우선 필수의약품을 중심으로 제네릭 의약품 생산이 가능하도록 기반을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의 노동력과 남한의 자금이 결합된 형태의 의약품 생산 합작회사를 설립하여 의약품을 공급하는 정책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

 

 

통일대비 의료계 준비

 

▲ 신희영 교수(서울의대 통일의학센터 소장)     © 후생신보

4.27 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는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평화체제 구축 가능성을 두고 많은 이들이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남북한 보건의료 협력측면에서 현재 급변하는 한반도의 상황은 반갑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준비되지 않은 남북한 교류협력은 질병양상의 위험성이 크게 되며, 한국정부는 사실상 지난 10년간 북한과의 보건의료 교류협력이 끊겨 북한의 보건의료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한국 정부의 의약품지원은 2015년 12월 백신 지원이 마지막이었고, 국제기구를 통한 의료 지원 또한 2016년부터 중단됐다. 올해 2월 글로벌펀드(GFATM)는 2018년 7월부터 북한의 결핵 및 말라리아 퇴치 프로그램 중단을 선언하여 한국 정부는 국제기구와의 다자협력을 통한 북한과의 협력방안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통일을 대비한 북한과의 보건의료 교류협력은 한국정부에게 큰 부담을 떠 안게 되는 상황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반도의 질병안전(건강권 보장)을 위해서는 북한과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다각적인 변수들을 고려한 원칙과 전략들을 세워 대북 보건의료 교류가 이행되어야 한다.

 

대북 보건의료 교류, 확실한 전략 필요

 

국제사회와 한국정부의 대북 원조는 1995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은 원조가 필요한 상황에 처해있다. 북한에서 보건의료 지원 활동을 수년간 지속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여전히 북한의 원조 모니터링이 원활하지 않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학계와 대북지원 활동가들은 북한 보건지표 정보의 신뢰성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한다. 이는 원조 효과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점으로 이어져 대북지원 사업 전략계획 시 연속성을 가진 사업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북한 주민의 건강과 치료를 담당하고 책임지는 주체는 북한 당국으로 국제사회와 한국 정부의 보건의료 지원의 원칙과 목표는 북한이 자립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 둬야 한다. 또한 남북교류 활성화는 남북 간 활발한 인구 이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상호 감염병 관리 전략이 교류 전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만 한다. 통일 된 한반도의 Health Security를 위해서는 북한의 감염성 질환(결핵, 말라리아, B형간염, 신종 감염성질환, 인수공통질환 등)의 대책이 사전에 필요하고, 이는 남북이 공동으로 협력해야 한다. 

 

북한의 자립적인 보건의료 지원기반을 위해서 가장 당면한 사업으로는 감염성질환 관리체계 사업과 모자보건사업 지원이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두 사업은 모두 과거 한국정부가 지원했던 대북사업으로 기존 사업의 평가는 이미 이뤄졌고, 이전의 사업에서 장기적인 전략을 구상하여 연속성을 가진 사업 전략 구상이 필요하다. 

 

먼저 감염성질환 관리체계 사업은 한반도의 긴급 위기 상황 시 공동 대응해야 하는 영역으로 북한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의료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물품공급이 지원되어야 하며, 동시에 인적 역량강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UN제재가 풀리면 감염성질환 관리체계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과 지역별 환자들과 우선적으로 산모, 소아를 중심으로 영양 공급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 구축 사업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질병 진단 및 치료를 위해서는 진단을 위해 각 도별 의료기관, 위생방역소, 실험실의 기능을 위한 소모품 지원에서부터 인프라 구축까지의 단계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치료를 위해서는 예상되는 질병별 의약품 지원, 유지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북한 의료 인력들의 역량강화가 필요하며 병원, 실험실, 위생방역소의 각 주요 분야의 인력 역량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전반적인 북한 보건의료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북한 의료시설의 현대화, 상하수도 건설, 질병 진단을 위한 의료장비, 소모품, 치료를 위한 의약품 지원, 의약품 공급을 위한 치료 장비 및 수리 역량 구축 등 다양한 분야가 복합적으로 고려되어 진행되어야 한다. 

 

주요분야 인력 역량 강화 절실

 

북한에 의료시설 현대화를 경험한 전문 인력과 대북 민간단체 활동가들과의 과거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통합적 선별지원(bottom up + top down)을 준비해야 한다. 의료기관별 표준모델을 제시해 북한의 리/동 진료소, 시/군/구역 인민병원, 도 인민병원을 통합적으로 동시에 지원하되 지원수준과 범위는 기준을 정해 선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의료기관별 표준모델을 제시해 북한 의료시설을 현대화 하고 각 지역별 특수성으로 정형화된 모델이 맞지 않는 지역은 적절한 공간개념을 제시하고 사례별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의 보건의료 전달체계는 현재 의약품과 의료장비 낙후로 평양 이외의 지역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으나 충분한 지원이 이뤄진다면 빠른 시일 내에 자립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UN제재의 어려움 속에서도 북한은 최근까지 의료시설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국제기구와 국제 NGO 지원을 받아 평양 이외에도 평안북도 구성시에 위치한 제1인민병원(시급병원)의 병동이 신축되고 있고, 평양에는 어린이 재활병원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최근 변화를 의료계에서는 빠르게 인식하여 북한의 인프라, 지역 환경요인, 사회경제적 특성을 반영한 자립적인 질병 예방, 치료,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다각적인 계획안을 마련해야 한다. 

 

인적 교류 위한 철저한 준비 필요

 

북한과의 인적교류협력에 대한 준비 또한 필요하다. 북한의 자립적인 질병관리체계 지원 사업 에는 물적 지원뿐만 아니라 인력의 교육과 양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북한의 의료진 교육은 추후 통일을 대비한 한반도 의료인력 통합의 여러 문제점을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북한의 의료인력 역량강화는 북한 의료시설 현대화를 통한 남북한 공동 진단부터 남북한 공동 연구까지 그 범위가 광대하다. 지난 2000년대 평양의학대학 소아과 의료인력 현지교육을 참여한 많은 의료진의 공통된 의견은 북한의 의료 인력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 크다는 것이었다. 

 

현재 북한에서도 의학대학 입학은 삼수 사수를 할 정도로 인기 있는 학과이며, 최근 북한에는 전문의 과정 교육 커리큘럼이 신설되었다고 한다. 또한, 북한의 요청에 의해 설립된 평양과학기술대학에는 작년 의학대학이 신설되었다. 김정은 정권은 신 의료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고, 북한은 원격의료를 북한의 최신 의료기술로 선전하고 있다. 또한 북한 의료진의 국제사회 SCI급 논문 투고 독려를 통해 선진 기술 습득을 위해 다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북한의 변화는 통일을 대비한 남북한 의료기술 발전에 긍정적인 요점으로 생각된다. 

▲ 2008년 평양의학대학 의료인력 현지교육 과정 모습     © 후생신보

 

따라서 우선적으로 한국 의료계에서는 북한 의료진을 교육할 수 있는 공동 지침 개발이 필요하다. 북한은 70년 이상 외부 사회에 고립되어 독특한 질병의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북한에서 활동한 의사들의 의견이다. 1980년대 한국에서 발생한 질병이 아직 북한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추측도 있다. 만약, 남북한 공동 진료 시 한국에서 사라진 질병이 면역력 없는 북한 주민들에게 갑자기 발생하게 되면 북한 의료진은 익숙하지 않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대처가 늦게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북한의 질병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며, 공동 개발 지침 뿐만 아니라 공동 연구와 개발 사업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소통하여 한반도의 질병안전(건강권 보장) 대책 마련을 단계적으로 논의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북한의 의료취약계층인 산모와 어린이의 영양관리는 통일을 대비해 가장 신속히 지원해야 할 사업이다. 북한의 모자보건 사업은 한국정부가 국제기구 WHO, UNICEF, WFP를 통해 최근까지 지원한 사업으로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의 최근 현황과 기존 사업 평가를 통해 사업의 연속적인 전략 구축도 가능하다. 주요사업은 영양지원, 예방접종, 필수 응급산과진료 인프라 영역이 되어야 하고, 각 영역은 국제기구와의 공조를 통한 사업 추진과 모니터링이 요구된다. 

 

현재 북한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증가하더라도 한반도의 평화 국면은 어떠한 변수로 전환될지 예상하기 어렵다. 지금 당장 북한과 한국정부의 직접적인 보건의료 교류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평양 이외의 지역에 자유로운 사업진행이 이뤄지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간 한국정부는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의 모자보건 사업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다해 왔고, 다양한 국제기구와 민간단체들이 북한의 모자보건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북한의 모자보건 사업은 장기적인 사업전략으로 지원계획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한국정부와 의료계는 제3의 채널을 통한 북한 모자보건 사업의 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지속적인 관심과 모니터링을 계속 이행해야 한다.  

 

모자보건사업 지원에 관심 가져야

 

지금까지 통일을 대비하여 북한의 자립적인 보건의료 지원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사업의 수행을 위해 무엇보다 주요한 것은 북한 정부의 적극적인 이행과 대북 파트너의 원활한 의사 교환이다. 한국정부의 대북 보건의료 협력 사업에서 대북 파트너는 북측 보건성이 되어야만 원활한 사업진행이 가능하다. 

 

그간 남한의 대북 보건의료 사업의 북한 파트너는 북한의 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 민경련(민족경제협력연합회) 사람으로 보건의료 비전문가그룹에서 담당했기 때문에 북한 스스로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지속성 있는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보건의료 사업별 질환 관리는 북측 보건성 질병 전문가 대표단과 한국 질병 전문가 대표단이 함께 사업을 논의하고 서로의 우선순위 보건사업을 선정하여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 평양의학대학병원 어깨동무소아병동 2008년 10월 24일 개원, 당시 북한 중앙급 병원 중 유일한 소아과 병동 신축건물로 주요시설로는 외래진료실, 집중치료실, 각종 검사실, 입원실, 놀이방, 도서실, 의료교육센터가 있음     © 후생신보

 

이전에 한국정부는 먼저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를 위한 법적 제도가 시급이 마련해야 한다. 독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통일 이전 동서독 간의 보건협정을 체결해 감염성 질환, 의약품 교환, 여행 시 발생하는 환자의 치료에 관한 교류와 협력이 가능했었다. 2005년부터 「남북보건의료 교류협력 증진 법」이 세 차례 발의되었지만, 2017년 3월 법안심사단계에 멈춰있는 상황으로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의제로는 보건의료 교류협력을 위한 법적 효력이 있는 남북한 법적 합의 체결이 시급히 필요하다. 

 

한반도의 평화구축의 과정은 최근 롤러코스터를 탄 듯이 극적인 반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인도적인 측면에서 북한의 자립적인 보건의료 지원기반을 위한 노력은 결국 한반도 질병안전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이러한 극적인 정세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신속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의료계에서도 통일의료에 관한 관심을 높여 통일을 대비한 의료계의 역할과 목소리를 지속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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