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말기암환자 관리 실태 및 향상 방안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로 더 이상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말기암환자들은 흔히 3차 의료기관의 의료진으로부터 집에서 편히 쉬시라는 말을 들으며 퇴원을 권유받게 된다.
하지만, 가정에서 적절한 케어를 제공하는 의료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에 말기암환자의 32.4%는 아무런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가정에서 방치되어 있는 대부분의 말기암환자들은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의 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상당수는 극심한 통증을 견디지 못하여 응급실을 방문하게 된다.
최근 암환자에게는 입원에 대한 본인부담금이 10%로 줄어들게 되어 경제적인 장벽이 낮아지면서, 많은 말기암환자들이 3차 병원의 급성기 병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정작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입원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일반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말기암환자들의 경우에도 현 의료시스템체계가 케어보다는 치료 중심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급성기질환 환자들에 비해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 채 심한 통증과 증상 속에 소외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
대부분의 말기암환자와 가족들은 오랜 투병생활을 거치면서 심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국립암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매년 약 3만여가구가 저축의 대부분을 상실하게 되고, 1만여가구는 치료비용 때문에 더 싼 집으로 이사를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3만여가구는 환자를 간병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이와 같이 말기암환자와 가족은 통증이나 증상조절 등 의료서비스 뿐만 아니라, 심리사회 및 영적 지지, 경제적 지원과 같은 복지서비스에 대한 요구도가 높기 때문에 독특한 보건의료서비스 체계가 필요하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죽음을 삶의 일부이며 자연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고 말기 환자에게 통증 및 증상 완화, 부적절한 임종 연장의 회피, 환자의 자율성 존중, 가족과의 관계 강화, 심리 사회적 지지, 영적 및 존재적 신념 등 인생의 마지막에 중요한 요소들을 강조하며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인적인 의료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관련하여 비교해야 할 다른 보건의료제도로는 노인요양제도(수발보험)와 장기요양제도가 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노인요양제도는 주로 간병서비스 제공과 같은 사회복지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말기암환자를 돌보기 위해서는 간병서비스의 지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진행암환자의 70%, 말기암환자의 80-90%정도가 통증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이러한 통증은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으면 90%이상에서 조절이 가능하다.
즉, 말기암환자는 간병서비스와 같은 사회복지서비스 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구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노인요양제도(수발보험)와는 다른 보건의료체계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노인병원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장기요양제도는 주로 노인성 만성병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일반병원에 비해서 의사나 간호사 인력기준이 느슨하다. 즉 적은 수의 의료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돌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기암환자에게 양질의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반 입원환자에 비해서 훨씬 많은 의료 인력이 필요하다. 우선 급성기 병상에 입원해 있는 일반 환자들은 평균 9개 미만의 증상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서, 말기암환자들은 13개 이상의 증상을 가지고 있으며, 증상의 중증도도 심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위한 간호 인력 기준은 일반 의료기관에서 제시한 간호 인력 기준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 위에서 기술한 여러 이유 때문에 말기암환자를 효과적으로 돌보기 위해서는 노인요양제도나 장기요양제도와는 구분되는 독립적인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요구된다.
’04년 국립암센터에서 실시한 대국민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57.4%에서 호스피스를 이용할 의사가 있었다. 또한 ’04년에 실시한 말기암환자 호스피스 시범사업 결과에 의하면,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반적인 치료에 대하여 84% 이상의 환자와 가족들이 만족하였고,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은 지 1주일 후에는 83.6%의 환자에서 양호한 통증관리를 보였었다.
이뿐 아니라 호스피스완화의료 기관의 말기암환자 1인당 의료비용은 기존 의료체계에 비해 1년 동안 평균 100~400만원 정도 낮게 소요되었다. 이와 같이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기존의료체계에 비해 경제적이면서 만족도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국가적으로 요구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상 수는 인구 100만명당 50병상 정도로 제시되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필요로 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상 수를 추정하면 약 2,500병상 정도이다. 하지만 2005년에 국립암센터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370여병상만 확보하고 있어 15%의 충족율에 불과하다. 제도적인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이정도의 수준을 유지했던 것도, 소수 뜻있는 의료진들과 종교단체에서 헌신적으로 말기암환자분들을 돌보셨기 때문에 가능했었다고 본다.
하지만,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적절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고는 더 많은 말기암환자들이 혜택을 보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을 육성하고 관련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국가적인 계획이 이루어져야 하며, 전인적인 돌봄에 대한 적절한 재정지원과 수가 개발이 동반되어야 된다.
또한, 의대나 간호대 교과 과정 중에 암성 통증 관리나 완화의료에 대한 교육을 개설하며, 국가고시에 필수 항목으로 포함시켜 의료진이 기본적인 지식을 지닐 수 있게 해야 한다. 전문의 수련에도 완화의료에 대한 과정을 확대시켜 실제 완화의료를 담당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적극적으로 육성시켜야 한다.
이러한 전반적인 과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3차 의료기관에 몰려있는 말기암환자들을 지역의 완화의료기관에서 케어를 받도록 유도하는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의 3차 의료기관에 대한 정서적 의존도가 높고, 완화의료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현실에서, 3차 의료기관에 입원해 있는 말기암환자를 지역의 완화의료기관에 바로 의뢰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3차 의료기관 병원 구역 내에 완화의료 병동이나 입원시설을 확보하고, 급성병실에 입원해 있는 말기암환자를 이동시켜 일차적으로 완화의료에 대한 경험을 갖게 한 후에 지역의 완화의료 기관으로 의뢰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 중심의 완화의료 기관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병상 이용률이 낮은 중소병원이나 공공보건의료기관(예: 의료원 등)의 일부 병동을 암환자 완화의료병동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전체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전국적인 인프라를 구축한 후 보건소의 재가암환자 관리사업과 연계한다면 현재 왜곡되어 있는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면서 민간과 공공이 협력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확산되어 정책결정에 우선순위로 인정받아 적절한 예산 및 정책지원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일선 기관에 종사하는 담당자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홍보가 반드시 요구된다.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널리 알려지기 전에 가까운 친척 중에도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다가 돌아가신 분이 있다. 그때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통해 적극적인 통증조절과 심리사회적인 지지를 받으셨다면 훨씬 품위있게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에 ‘의미있고 전인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의료이다. 많은 말기암환자들이 의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가운데 방치되고 있고, 도움이 안되는 민간요법이나 건강기능식품에 의지하는 현실에서 하루 빨리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우리나라에 정착되기를 바란다. 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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