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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49

후생신보 | 기사입력 2015/05/10 [12:14]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49

후생신보 | 입력 : 2015/05/10 [12:14]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ailurophile)

 

 

미국의 언어학자며, 시인이며, 러시아어 교수였던 로버트 베어드(Robert Beard 1938-)는 그의 책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 100(The most beautiful words in English)’라는 책에서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cat-lover)’을 말하는 또 다른 단어 ‘ailurophile'A 에서 꼽은 2 개의 아름다운 단어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C에서 4개를 꼽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공교롭게도 고양이 눈과 같은(like a cat's eye)’ 이란 뜻의 'Chatoyant'라는 단어군요.

 

저도 어릴 때 고양이를 3대나 키워봐서 고양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잘 압니다. 지금도 사랑스러운 개를 보면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고야 말 듯 고양이만 보면 저도 발걸음을 멈추고 야옹야옹하며 고양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부릅니다. 어릴 때 채식을 하시던 부모님 때문에 우리 집 고양이는 김치와 된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몰래 쥐나 참새를 잡으러 다녔지요. 사실 우리 고양이는 채식고양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한 번은 살아있는 생쥐를 방안에까지 물고 온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질색을 했지만 살아있는 생쥐를 요리조리 몰면서 가지고 노는 것을 보는 것은 나와 남동생에게 흥미로운 볼거리였습니다. 생쥐가 지쳐서 기진맥진해 지자 오도독 거리며 잡아먹고는 다리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발톱을 혀로 핥고서 이불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나와 남동생은 서로 안고 자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고양이는 그르렁그르렁 거리면서 평화로운 잠을 청했습니다. 아직도 톰과 제리를 보면 어린 시절 그 고양이들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그 후로 가끔 고양이는 쥐를 물고 들어왔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가 빗자루로 쫓아내셨습니다. 그러자 고양이는 완전히 채식고양이 행세를 했습니다. 한 번은 고양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고양이를 찾으러 집 주변을 돌며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다음 날도 들어오지 않자 우리들은 고양이가 집에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가 무려 두 달간 지속되던 어느 날 이웃 마을 아주머니 한 분이 고양이를 안고 왔습니다.

 

이 고양이가 길거리에서 울고 있어서 집이 없는 줄 알고 데리고 갔어요. 한 달 쯤 지나자 특이하게 이 고양이가 쥐도 관심이 없고, 채소도 먹고, 김치도 먹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혹시나 이 집 고양이가 아닐까 해서 데리고 왔어요. 마치 쥐 사냥을 그만둔 장화신은 채식 고양이지 뭐에요. 호호호.”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또 그 새끼가 커서 새끼를 낳고... 새끼들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 전에 5마리까지 기른 적이 있었는데, 우리가 똥을 다 치우겠다고 부모님께 약속을 했지만 사실 하루가 지나자 다시 어머니의 몫이 되었습니다. 집에 들어오면 고양이 똥 냄새가 방에 배어있었는데, 우리는 그 냄새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양이들을 안고 다녔습니다. 정말 새끼 고양이는 귀엽고 예쁩니다. 눈도, 입도, 귀도, 꼬리도 예쁩니다.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장난을 칠 때면 발톱을 감춥니다. 귀 뒤와 턱 밑을 쓸어주면 금방 그르렁그르렁 거리며 좋아합니다. 움직이는 장난감을 몸을 움츠리며 쏘아보다가 쏜살같이 튀어나가서는 앞발로 이리저리 굴리고 다니는 모습은 강아지가 보여줄 수 없는 귀여움입니다.

 

사실 아주 어릴 때는 고양이가 무서웠습니다. 멀리서 놀러왔던 고등학생 사촌 누나가 검은 고양이를 닮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의 작품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 1843) 이야기를 해 준 후부터 혼자서 집에 있으면 벽에서 검은 고양이가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 때의 충격 때문에 아직도 검은 고양이는 좀 정이 가지 않는데, 지난 번 어머님 댁에 놀러갔을 때 시크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검은 고양이 때문에 무서움을 덜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어릴 때 고양이를 지켜본 적이 있는 저는 이 소설을 통해 그 고양이가 나를 이렇게 지켜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그 때 고양이가 쥐 모양의 장난감을 쫓아다닌 것도, 아니 쫓아다녀준 것도 다 주인 아이들의 입에 미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일가요? 지혜로운 고양이의 눈에 인간은 속은 참으로 바보 같고도 좁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고양이를 키우자고 난리를 피울 때 옆에서 3번이나 설득해 보았지만 아내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고양이 똥냄새를 맡으며 살 자신이 없기도 해서 안심한 면도 있었지요. 그걸 생각하면 부모님은 우리를 위해서 지금 우리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그 귀찮은 고양이 수발을 3대나 하셨던 것입니다. . 어머니. 전화를 드렸습니다. “고양이 잘 커요?” “그럼. 그런데 언제부턴가 검은 고양이가 집에 안 와. 한 달을 찾아다녔어.” “어릴 때 고양이 찾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했는데 생각나세요?” “그럼. 고양이 볼 때마다 어릴 때 니네들이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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