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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42

후생신보 | 기사입력 2015/02/16 [11:29]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42

후생신보 | 입력 : 2015/02/16 [11:29]

망막에 생긴 베를린 부종

 

 

15세 중학생이 친구와 다투던 중에 눈을 주먹에 맞은 후 응급실에 왔습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들과 같이 왔는데, 가해학생의 어머니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주먹에 맞은 눈은 퍼렇게 멍들었고, 눈 검사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부었습니다. 앞방에 피도 조금 퍼져있었으며, 시력은 0.7로 조금 떨어졌습니다. 망막을 보니 색이 허옇게 부어있는 부위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외상에 의해 망막이 부어있는 부분을 망막진탕(commotio retinae) 또는 이것을 발견한 의사의 이름을 따서 베를린 부종(Berlin's edema)이라고 합니다. 눈 외상이 있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소견입니다. 다행히 사물의 초점이 맺히는 황반은 완전히 침범되지 않아서 시력은 회복될 것이라고 두 학생과 어머니들을 안심시키고 X-ray 검사를 보냈습니다.

 

검사를 하고 오는 동안 왜 베를린 부종이라고 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이 때만 해도 베를린이 사람이름인지, 도시이름인지도 몰랐으니까요. 그러다가 베를린 부종이 루돌프 베를린(Rudolf Berlin, 1833-1897)이라는 독일 의사의 이름을 딴 것이며, 그가 40세인 1873년에 망막진탕을 처음 발견해서 보고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난독증(dyslexia)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 분야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사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난독증은 이기지 못하면 바보가 되고, 이기면 천재가 되는 병이므로 베를린 재단은 이들이 난독증을 이길 수 있도록 후원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은 괴팅겐(Gottingen) 의대를 졸업하고 당시 독일 안과의 아버지로 불리던 폰 그라페(Albrecht von Graefe)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29세에 스투트가르트(Stuttgart)에 안과의원을 차렸는데 뜻한 바가 있어서 37세에 광학을 다시 배운 후 42세에 스투가르트 수의학교(Veterinary School in Stuttgart)의 비교 안과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주로 말 눈의 광학을 연구했으며, 눈물주머니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47세에 안과의 모든 것을 담은 핸드북을 만든 후 스승과 공동출판을 했습니다. 이 후 독일 국립과학원(Leopoldina academy of sciences)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62세에 로스톡대학(Rostock university)의 내과과장으로 있다가 64세에 대학장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 스위스에 온천여행을 갔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로스톡에 안치되었습니다.

 

베를린 부종이라고 하는 망막진탕은 어떻게 될까요? 정말 심한 외상을 입고 망막의 중심부인 황반부가 심하게 부은 경우, 황반부의 시각세포가 손상을 입고 회복이 되지 않아 시력이 소실될 수도 있습니다.

다행하게도 이번 학생은 눈 주위 뼈도 골절이 없었고, 계속 관찰한 결과 한 달 후에 허옇게 변한 부위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시력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지요. 둘은 다시 예전처럼 친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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