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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40

후생신보 | 기사입력 2015/01/12 [16:22]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40

후생신보 | 입력 : 2015/01/12 [16:22]

 
가볍게 보여지기
 
동익이라는 친구가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페이스 북에 어떤 친구가 글을 올렸어. 자신의 위치를 표시한 구글맵과 함께 ‘네가 6시에 문을 닫으면 난 5시부터 행복할거야.’ 라는 문장을 올린 거지. 이미 답글들이 몇 개 달려있더라고. ‘주말에도 일하고 계시군요.’, ‘6시에도 퇴근을 못하시는 거에요?’, ‘어. 우리 동네 근처인데...’ 등 일상적인 답글이었어. 그런데 난 이렇게 답글을 달았지. ‘친구야. 주말 근무에 길들여지지마. 넌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인과 놀아줄 책임이 있어.’라고 말이야.”

“와. 뭔가 있어 보이는데...” 하자

“이 문장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하고 묻습니다.

“아하. 어린왕자에 나오는 글을 패러디 한 것이군.”

“맞아. 그 친구에게서 답글이 왔지. ‘우와. 반갑다. 친구야. 어린왕자를 아는구나.’ 라고.”

“나도 응수해 줬지. ‘이 정도가지고 뭘.’”
 
그랬습니다. 글을 처음에 올렸던 친구가 주말임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을 한탄하며 6시라도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을 담아 생떽쥐뻬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한 유명한 구절 - “나를 길들여 줘...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그러나... 만일 네가... 무턱대고 아무 때나 찾아오면... 난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니까...” - 을 패러디 한 것입니다.

그러자 많은 친구들이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사정을 안타까워하거나 그가 지금 일하는 위치가 어디인지에 관심을 보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동익이는 이 문장이 어린왕자에서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다른 어린왕자의 구절 -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것을 잊어서는 안 돼...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난... 나의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되뇌었다. - 을 패러디해서 답글을 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왕자의 내용을 모르거나 잊어버린 친구들은 일상의 말로 답변을 달았고, 눈치를 챈 동익이는 어린왕자의 말로 답변을 달았는데, 그것을 알아 본 친구가 기뻐했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동익이의 얘기를 듣고 있던 용이란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래서 동익이를 좋아해. 나보다는 확실히 좀 똑똑하거든. 그런데도 또 겸손하기까지 하니 말이야.”

“똑똑한데 겸손하기까지?” 하고 묻자

“마지막에 ‘이 정도가지고 뭘.’ 했잖아. 겸손의 접미어란 말이지.” 하고 대답합니다.

“그게 겸손의 접미어라고? 진중하지 못한 게 아니고?”

“그게 그 말이야.”

“진중하지 못한 게 겸손한 거란 말이야?”

그러자 용이 계속 얘기했습니다.

“동익이는 똑똑한데 꼭 끝에 진중하지 못한 말을 붙이잖아. 그런데 그게 겸손한 거라고. 잘 봐. 동익이가 그 말을 안 달았으면 똑똑한 채로 그냥 끝났을 거 아니야. 그러면 일종에 똑똑함을 자랑하는 거니까 교만한 거잖아. 그런데 진중하지 못한 접미어를 슬쩍 넣어서 본인이 별로 진중하지 못하다는 것을 티를 낸 것이거든. 그러니까 겸손한 거라구.”
 
우리는 가만히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잘난 체 한다는 것은 가벼운 행동에 속합니다. 그런데 지금 용은 겸손하다는 표현을 써 가며 사람이 가볍다는 말을 좋게 포장해서 점잖게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칭찬인지 비꼬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괴변에 동익이가 화를 낼만 하건만 동익이는 뭐 그 정도의 말은 동의한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난 지적이지만 가벼운 사람이 되고 싶어. 조금 더 정확히는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고 싶어. 왜냐하면 지적이면서도 무거우면 다가가기 어려워 할거고, 무식하면서 가벼우면 다가가고 싶지 않아 할 거니까.”
 
저는 이 친구들이 좋습니다. 가볍게 보여지고 싶다며 솔직히 이야기 하거나 그것을 겸손이라며 아름답게 포장해주는 이 친구들의 참을 수 없는 지성과 우정의 가벼움이, 많은 사람들 뿐 아니라 저로 하여금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 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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