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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33

후생신보 | 기사입력 2014/11/06 [10:08]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33

후생신보 | 입력 : 2014/11/06 [10:08]

 아. 탐스러운 복숭아
 
30대 후반의 남자가 응급실을 찾은 것은 밤 1시가 가까울 때였습니다. 아. 이제 막 잠이 들었을 시간이지요. 응급실 인턴 선생은 전화로 머뭇거립니다.

“선생님. 이 환자를 안과에서 봐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한 번 봐 주시면 안 될까요?”
웬만하면 아무 대꾸 없이 “알았다. 내려갈게.” 하겠지만 왠지 막 잠을 방해 받은 게 억울하기도 하고, 단잠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서 안 내려갈 수 있는 구실을 찾으려 했습니다.
“왜?”
“손발이 부어있고, 뻣뻣해져 있어요.”
“그런데”
“그런데 눈도 약간 부어 있어요. 알레르기 같긴 한데 뭔가 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피부과는 응급환자를 보지 않기 때문에 피부질환 환자가 오면 인턴 선생 선에서 주사를 뭘 주고, 하루치 약을 어떻게 지어주라는 메모지가 책상 유리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냥 피부과 약을 주고 다음 날 오라고 하면 되잖아.’ 하는 말을 꾹 삼키고 안과로 향했습니다. 안과 앞에는 난처한 표정의 한 남자가 응급실에서 올라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늦은 시간에...”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제가 사실 병원에 내일 가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눈을 감고 잠을 들기가 좀 무서워서요. 눈을 감으면 숨쉬기가 답답해 져요. 눈을 뜨면 좀 참을 만 합니다만...”
“아. 네. ”
“아무래도 점심 때 먹은 음식이 문제인 것 같아요.”
“혹시 알레르기 체질인가요?”
“다른 건 다 괜찮은데요... 딱 복숭아만 알레르기가 생겨요. 그런데 최근 복숭아를 먹은 적이 없거든요.”
시력과 안압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눈꺼풀이 약간 부어있었고, 눈을 비벼서인지 눈 가장자리가 약간 헐어있었는데, 이 정도로 응급실에 올 만한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10살 때까지 아무 문제없이 복숭아를 먹었어요. 물렁물렁하고 물이 많은 복숭아를 한 입 입에 물면 물이 뚝뚝 떨어지며 입안에 퍼지는 향기와 함께 치아 사이로 스며드는 복숭아의 달콤한 과즙 맛을 알고 있지요. 그러다가 10살이 되자 복숭아만 먹으면 알레르기가 생기는 거에요. 그 후로 지금까지 복숭아를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제 아내와 아들이 가끔 제 앞에서 복숭아를 먹는데 얼마나 먹고 싶은지 도저히 못 참아서 딱 한 입만 먹고 음미한 후 뱉습니다만 그래도 알레르기가 생깁니다. 그런데 오늘 점심 때 후식으로 나온 그 감무스는 정말 맛있었어요. 계란과 크림으로 만든 프랑스식 디저트인데, 과일을 으깬 과즙퓌레 위에 홍시의 껍질을 벗겨서 올려놓은 것입니다. 아. 이제 감도 못 먹게 되는 것일까요?”

80Kg 정도는 될 것 같은 조금 뚱뚱한 체구와 그가 묘사하는 과일 맛이 어찌나 조화롭게 보이는지... 안타까울 지경이었습니다.

“주사와 약을 드릴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 잠을 청해 보세요. 그리고 내일 잠깐 시간을 내서 외래로 오세요.”

간혹 뚱뚱한 체구에서 과일 알레르기가 생기면 성대까지 붓게 되어 숨을 잘 못 쉬게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추가로 오늘 밤이라고 정 답답하시면 다시 오시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그분은 그 다음 날 오후에 오셨습니다. 외래를 기다리시다가 저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듯이 쫓아왔습니다. 제가 인사를 드리자 그 분은 다짜고짜.

“선생님. 제가 감은 먹을 수 있답니다.”
“...”
“어제 그 음식점에 가 봤어요. 감무스에 대해서 물어보았죠. 그랬더니 감무스 과즙 소스에 복숭아가 들어있다고 했어요.”
하더니 제 손을 잡습니다.
“아. 정말 다행이에요. 축하드려요.”

신선이 먹는다는 복숭아(武陵桃源 무릉도원)는 먹지 못하더라도, 먹으면 신선처럼 오래 산다는 감(以枾爲仙 이시위선)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어찌 축하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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