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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31

후생신보 | 기사입력 2014/10/13 [14:04]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31

후생신보 | 입력 : 2014/10/13 [14:04]

 
눈이 터진 것 같아요. 2
 
전화기 너머로 잠에서 덜 깬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 이 선생. 무슨 일이야?” “응급실에 환자가 한 명 오셨는데 아무래도 눈이 터진 것 같아요.” “그래? 확실한 거지?” “네. 눈에 확실한 외상력이 있고, 시력이 갑자기 안 나오고, 흰 결막 구석 쪽에 갈색 홍채 조직이 삐져나와 있습니다.” 흰 결막 위로 갈색 조직이 보인다면 더 이상 왈가왈부 할 이유가 없습니다. 4년차 선생은 “내가 결혼식에 가야 돼. 갔다가 바로 내려갈 텐데 한 오후 5시 쯤 될 거야.”

그 때부터 부지런히 응급처치와 수술 준비를 했습니다. 환자 눈 주위에 쇠로 된 쉴드를 붙여주고, 입원을 시켰으며, 금식 오더를 내렸습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아무래도 눈이 터진 것 같으니 빨리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가족들은 휴일에 놀러가다가 이게 무슨 일인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놀란 얼굴로 질문을 했습니다. “꼭 지금 수술을 해야 하나요? 전신마취를 해야 하나요? 시력은 찾을 수 있나요?” 끝없는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하고 나자 지금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은 눈물을 보였습니다.

당시 수술 방법은 파열된 부위를 실로 봉합한 후 그 주위를 냉동기로 얼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파열된 부위의 안쪽에 벽지처럼 발라져 있는 망막도 같이 찢어져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망막이 찢어져 있으면 눈 속에 있는 물이 스며들어가서 벽지 뒤에 물이 고이게 되는데, 결국 벽지가 벽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망막이 박리되어 실명이 유발됩니다. 찢어진 망막 부위를 얼리면 흉터가 생기면서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되지요.

4년차가 5시에 수술실로 바로 가겠다는 연락을 받고, 그 시간에 맞추어 환자를 수술실로 옮겼습니다. 전신마취를 걸고 눈 소독을 하는 동안 4년차가 들어왔습니다. 4년차는 메인 현미경으로, 저는 조수 위치에서 현미경으로 수술할 부위를 보았지요. 흰 결막 위로 갈색 홍채조직이 보였습니다. 4년차는 그 부위를 집게로 잡은 후 마취제를 주사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그 갈색 조직이 별로 부드럽지 않은 겁니다. 홍채가 삐져나온 것이라면 집게로 잡아당길 때 늘어져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 갈색 조직은 홍채가 아니었습니다. 흰 결막에 생긴 갈색 덩어리 모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눈이 터진 게 아니라 결막에 있던 덩어리 점인 셈이지요. 아. 그때의 심정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4년차를 서울에서 오게 한 것도 죄송하고, 수술 후 혼날 것도 두렵고, 환자에게 불필요한 전신마취 수술을 시행한 것도 죄송하고, 그리고 멍청이 의사로서 오진을 한 게 창피했습니다. 간단히 가위로 절제를 한 후 결막을 두 바늘 봉합했습니다. 4년차는 “그럴 수도 있지 뭐. 외상이 있었고, 모반을 본 적이 없을 테고, 수술 전 모반을 잡아당기기 전까지는 모반임을 알기 쉽지 않았을 테고... 그러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하며 쿨하게 이야기합니다. 혼날 것을 각오하고 있다가 너무 관대한 처사에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는 나오는데 뒤에서 “환자에게 설명 잘 해드리고 저녁 같이 먹자.” 합니다.

환자 보호자들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제 표정이 좋지 않자 다그쳐 물었습니다. “수술 결과가 좋지 않았나요?” “아니요. 수술 잘 됐구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잠시 충격 때문에 시력이 떨어졌지만 다시 돌아올 겁니다.” 가족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환자가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수술이 불과 10분도 안 걸렸고, 마취도 깊게 하지 않았던 터라 금방 회복을 했습니다.

저는 환자에게 한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습니다. “그 눈구석에 큰 갈색 점이 있지 않았나요?” “어릴 때부터 있었어요. 좀 보기 싫어서 그 점이 보이지 않도록 눈을 심하게 돌리거나 하지 않았지요.” “실은... 제가 그 갈색 덩어리 때문에 눈이 터졌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수술을 하자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그냥 갈색 덩어리 점이었어요. 너무 일을 크게 만들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혹시 그 점 없어졌나요?” “네. 제거했습니다.” “아아. 잘 됐어요. 옛날부터 없애려고 했는데 무서움이 많아서 못했거든요. 언젠가 전신마취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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