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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03

관리자 | 기사입력 2014/02/17 [12:10]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03

관리자 | 입력 : 2014/02/17 [12:10]

 
슬로 모션 거위마술 (Slo-mo Goose)
 
세계적인 미국인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David Copperfield, David Seth Kotkin, 1956- )는 포브스(Forbes)지가 선정한 가장 성공한 마술사입니다. 11개의 세계 기네스기록을 갖고 있고,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Hollywood Walk of Fame)에도 올라가 있으며, 프랑스에서 기사 작위도 받았고,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명명되었으니까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1년에 100회 이상의 공연을 했을 뿐 아니라 그가 출현했던 TV 쇼는 21개의 에미상(Emmy Awards)을 받았을 정도로 예술성을 인정받았으며, 4천만장의 티켓을 포함하여 총 40억불 이상을 팔았습니다.

그의 마술은 일반적인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모든 TV 시청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염력을 전달하기도 했고,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했으며,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탈출했고, 만리장성을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상상을 초월한 마술들을 선 보였는데, 그가 선보인 마술의 특징은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저는 2001년에 공연된 슬로 모션 오리마술(Slo-mo Goose)이 가장 재미있습니다. 물론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도 있겠지만, 제가 망막전임의를 마치고 모교병원에 돌아오던 그 첫해에 보았던 이 간단한 마술은 저를 새로운 감동 속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하는 일 속에 바로 이야기(story)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마술은 이렇습니다. 마술사가 큰 거위를 한 마리 데리고 나옵니다. 무대 중앙에는 상자가 하나 있습니다. 거위는 관객에게 입으로 물총을 쏘며 살아있음을 과시합니다. 마술사는 관객 중에 덩치가 좋은 한 사람을 데리고 나옵니다. 그에게 나무통을 주어 들고 있게 합니다. 마술사는 거위를 상자에 넣은 후 상자를 한 면씩 분해합니다. 그 상자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술사는 덩치가 좋은 관객에게로 가서 나무통을 엽니다. 거기서 살아있는 거위가 나옵니다. 거위의 이동에 관객들이 환호를 보냅니다.
 
마술사는 인사를 하고 질문이 있냐고 묻습니다. 관객은 다시 한 번 보여 달라고 하며 천천히 하라며 주문을 합니다. 마술사는 같은 마술을 다시 할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데리고 나온 거위는 모형거위입니다. 아까 그 덩치가 좋은 관객을 다시 부르고는 나무통을 다시 들게 합니다. 마술사는 매우 천천히 모형거위와 장난을 치며 마술을 시작합니다. 모형거위는 상자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거위가 상자에 들어가자 상자의 한 면씩 아주 천천히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 뒤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슬로 모션으로 나오며, 거위를 들고 갑니다. 마지막 상자의 앞면이 제거되자 거위는 안 보입니다. 이 번엔 마술사와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덩치 좋은 관객에게 슬로 모션으로 갑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모형거위를 나무통 안에 넣는데 잘 들어가지 않자 구겨 넣습니다. 심지어는 거위의 엉덩이를 관객의 얼굴에 비비기도 합니다. 거위가 다 들어가자 마술사는 나무통을 받아 듭니다. 덩치 좋은 남자도 슬로 모션으로 자리에 들어가자 관객의 반응은 뜨거워집니다. 마술사가 나무통을 열자 살아있는 거위가 나옵니다.
 
이 마술은 매우 간단하지만 다시 반복을 하면서 마술이 가지고 있는 불가사의한 놀라움을 익살스럽게 표현했으며, 더욱 재미있는 반전까지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마술 속에는 아무리 간단하더라도 이처럼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특히 이 슬로 모션 거위마술은 첫 번째 마술을 아주 천천히 다시 검토하는 중에 새로운 두 번째 마술이 튀어나오는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그렇다면 당시 병아리 망막의사가 이 마술에서 어떤 것을 느꼈냐구요?
 
마술사가 어떻게 관객을 속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이렇습니다. 모든 의사는 뛰어난 마술사라고요. 그런데 의사에게 어떤 특별하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매일 매일 똑같이 진료와 수술이 반복되는 지루한 삶(?) 속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기지 않는다면 의사는 지루한 직업의 대명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물론 가족들과 보내는 추억이나 자기발전을 꾀하는 취미활동을 잘 한다면 좋겠지요. 그렇지만 환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다면 의사는 정말 해 볼만 한 직업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지루했는데, 오늘 환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예전에 제가 좀 잘 해드린 환자였는데,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합니다. 갈까요. 말까요.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길까요, 아니면 귀찮은 일이 생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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