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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의 망막이야기 -37

| 기사입력 2004/12/23 [14:17]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37

| 입력 : 2004/12/23 [14:17]
 
두 얼굴의 사나이 베제프(vegf)


▲ 이성진 교수 <순천향의대 안과학교실> 

 지난 시간에 망막혈관의 치밀이음새(tight junction)를 구성하고 있는 오클루딘(occludin)을 저격한 당뇨망막병증(diabetic retinopathy)의 베제프(vegf, vascular endothelial growth factor,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라는 저격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베제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름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요?
 
 세포(cell)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입니다. 사람의 몸속에는 270종류 세포가 있으며, 몸에 산소를 공급하는 혈액 속의 25조개의 적혈구(red blood cell)와 1,400억 개의 신경세포를 포함하여 총 60조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구에 사는 인구가 60억이며, 지구가 속한 은하계의 별들이 2,000억 개인 것을 보면 우리의 몸은 또 하나의 우주임이 분명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세포에서 나와서 오늘날 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이러한 세포들을 성장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물질들을 성장인자(growth factor, gf)라고 합니다. 성장인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단백질들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아담을 만드신 후 그의 코에 ‘생기(the breath of life)’를 불어넣으셨다고 하였는데 성장인자들이 그 생기의 일부분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즉 태아가 건강한 아기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세포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해 줄 혈관이 필요한데 바로 이 베제프가 이러한 혈관을 만들 때 필요한 성장인자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성장인자에는 6개의 큰 패밀리가 있는데 이름의 첫 자만 따보면 t, h, e, p, i, f입니다. t는 변형(transforming), h는 간세포(hepatocyte), e는 상피(epidermal), p는 혈소판에서 기원한(platelet-derived), i는 인슐린과 비슷한(insuline-like), f는 섬유아세포(fibroblast)의 약자입니다.
 
 컴퓨터에 대해 잘 아는 한 친구가 이 글자를 보더니 “the pif! ‘pif’는 초기 window에서 dos용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파일인데...” 합니다.
 
 어쩌면 이 성장인자들은 임신 초기 엄마 배 속에 있는 태아가 아가로 성장하기 위해 혈관생성에 필요한 실행파일지도 모릅니다. 이 패밀리들에 대해 너무 많이 알려고 하면 다칠 수 있으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머리가 아파진다구요...
 
 베제프는 p 문중에 속합니다. p는 pdgf(platelet-derived growth factor, 혈소판기원성장인자)라는 이름의 약자인데 말 그대로 혈액응고를 담당하는 혈소판(platelet)이라는 세포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입니다.
 
 한참 지나서야 pdgf는 거대세포(macrophage), 혈관 내피세포(endothelium), 망막색소상피(retinal pigment epithelium) 뿐 아니라 암세포에서도 만들어진다는 것이 알려졌지요.
 
 한 때 p 문중은 20년 전만해도 암을 유발하는 단백질과 유사하여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protooncogene, 원발암유전자)로 오해받은 적이 있답니다. 1983년에 와터필드(waterfield)와 둘리틀(doolittle)이 각각 원숭이암바이러스(simian sarcoma virus)를 연구하던 중 암을 유발하는 단백질의 서열이 pdgf와 매우 유사함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p의 형제들은 4명인데 3명의 큰 형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지만(pdgf-aa, bb, ab) 베제프(vegf)만 이름이 다릅니다. 나중에 베제프는 자신의 이름을 딴 5명의 아들(vegf-a, b, c, d, e)과 함께 새로운 패밀리를 구성하게 되었지만요. 어째든 암의 연구가 진행될수록 베제프의 정체도 조금씩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태아는 생존을 위해 세포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해 줄 혈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암세포도 생존을 위해 혈관이 필요할까요?
 
 한번은 학자들이 암 세포를 동물의 눈 속에 넣는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눈 속에 떠 있게 하였고, 하나는 조리개 역할을 하는 홍채(iris)에 주사하였습니다.
 
 나중에 보니 눈 속에 떠 있는 암세포들은 2mm 이상 커지지 않고 정지했으며, 홍채에서 혈관형성을 이룬 암세포들은 2mm를 훨씬 넘게 자란 것 아니겠습니까? 이 실험 이후로 암세포가 커지고, 다른 곳으로 전이되기 위해서는 혈관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지요. 
 

 이번에는 미세한 주머니에 암세포들을 넣고 세포가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작은 구멍들을 뚫은 후 피부 밑에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주머니 주변에 혈관이 생기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암세포는 분명히 빠져나가지 않았는데요.
 
 아마도 암세포에서 어떠한 물질들이 나와 혈관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여러 실험을 통해 혈관을 만드는 데에는 어떠한 물질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 물질이 바로 베제프(vegf)와 f(fgf, 섬유아세포 성장인자)라는 성장인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암세포에서 분비한 베제프와 f가 주변에 있는 혈관에 도달한 후 혈관 안쪽에 있는 내피세포(endothelium)의 수용체(receptor)를 만나게 됩니다.
 
 그 후 베제프와 f의 신호는 세포 안쪽의 여러 단백질들을 거쳐 핵으로 전달되지요. 이 신호는 혈관 내피세포의 성장에 필요한 물질들을 만드는 유전자들을 깨우게 됩니다.
 
 내피세포는 아연(zinc)과 같은 금속이 포함된 단백분해효소(mmp, metalloproteinase)를 분비하여 내피세포 주변의 단백질과 다당류로 차있는 공간을 녹여버립니다. 이 공간으로 내피세포가 분열하여 증식하게 되고 많은 내피세포들이 관 모양으로 뭉치게 되면서 결국 새로운 모세혈관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왜 베제프가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아시겠죠? 그 이름 그대로 베제프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혈관을 만들기 위해서 내피세포를 성장시키는 물질입니다. 그런데 베제프는 태아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꼭 필요한 성장인자이면서 동시에 죽음을 부르는 암의 생존을 위해 일하고 있는 물질이기도 하네요. 그렇다면 베제프야 말로 너무나 다른 두 얼굴의 사나이가 아닙니까?
 
 한편 우리의 몸은 베제프의 작용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안지오스타틴(angiostatin)이나 엔도스타틴(endostatin)과 같은 혈관생성을 억제하는 단백질들이 베제프의 작용을 팽팽하게 견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제프가 이 균형을 깨뜨려야만 혈관이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혈관생성 억제단백질이 암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최근에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새로운 혈관을 만들지 못하는 쥐를 만들어서 암세포를 주사했더니 암의 성장이 줄어들거나 멈추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혈관형성을 억제하는 것은 중요한 항암의 기전이 되었습니다. 베제프의 생성을 막는 인터페론(interferon alpha), 베제프 수용체를 미리 막아버리는 항베제프항체(anti-vegf antibody), 내피세포의 성장을 직접 억제하는 엔도스타틴(endostatin), 내피세포가 자살하도록 유도하는 combretastatin 등 많은 물질들이 새로운 혈관형성을 억제하여 암을 치료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습니다.   
   / www.reti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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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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